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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그냥 저냥 민숭민숭 옥희의 영화

2010/10/02 01:51

   
오늘 "옥희의 영화" 를 보았다. 홍상수 감독.   개별적인 짧은 이야기 4 쪽 중 마지막 편 제목이 옥희의 영화이다. 

 

  첫 쪽은 영화감독 진구(이선균)의 하루를 따라간다.

 영화과 강사이기도 한 진구는 고집스런 여학생과의 상담을 마치고 영화과 송교수(문성근)의 사무실에서 영화계가 예술은 죽었고  자본을 따라 움직인다고 비판하는 송교수에게 권위와 존경심을 느낀다.

 진구는 자신을 부르지 않은 술모임 시간을 기다리며 교정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졸다가 니콘을 나이콘이라고 읽는 초보 찍사에게 사진 찍히고 찍사에게 자신이 영화감독이라고 말한다. 초보 찍사는 감탄과 동경의 눈으로 진구를 본다. 지나가던 교수로부터 송교수가 뒷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소문이 파다하다는 거 이외에 송교수가 돈 받았다는 다른 정보는 없다. 술자리 찾아간 진구는 송교수에게 뒷돈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동료가 가져온 양주를 축내며 남들보다 먼저 취한다. 오전에 감탄 존경하던 송교수에게 진구는 꼬부라진 혀로 소문을 놓고 덤빈다. 진구의 질문에는 근거가 없고 송교수의 대답은 아리송하다. 송교수가 진구를 대화와 해명의 상대로 보지 않는 듯 하기도 하다.

 

  둘째 쪽에서 영화과 학생 진구는 옥희(정유미)를 쫓아다니며 구애를 한다. 유치한 진구의 구애를 튕기며 너는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데? 하고 물으며 뻣대던 옥희는 진구의 숙달된 키스를 받는다. 옥희는 진구의 키스실력을 칭찬하고 진구는 나 , 처음이야 라고 뻔한 거짓말을 한다. 밤 새 걸어대는 진구의 전화를 안받는 것을 즐기는 듯한 옥희는 친구에게 사랑은 하지만 잠은 안자는 연애를 한다고 쿨하게 말한다. 연애 상대는 송교수인 듯하다.  옥희는 집 앞에서 전화해대며 떨고  밤을 샌 진구를 집안으로 들이고 잠자리를 하고 사귀기로 한다. 송교수는 옥희에게 너에게 찍접대는 진구에게 공정할 수 없으니 떨어내라고 한다.

 

 셋째 쪽에서 문성근은 강사. 폭설이 내린 날, 강의실에는 문성근이 학생을 기다릴 뿐, 아무도 오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한다. 이 짓을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생각한다. 지나가던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온다.  눈이 와서 학생들이 못 오는 모양이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교수에게 문성근은 이번 문득 학기까지만 강의를 하겠다고 말해버린다. 문성근은 영화를 곧 시작하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강의를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한다. 영화 할 거라는 건 뻥이다. 교수는 요새같이 어려운 때 영화를 하게 되었으니 잘 됐다고 한다.

늦게나마 영희가 오고 진구가 왔다. 셋은 인생 전반에 걸쳐 대화를 나눈다. 밤에 문성근은 혼자 술을 마셨다 . 스스로를 위하여 비싼 안주 산 낙지를 먹었다. 목에 걸린 낙지를 토해내니 시원하다. 전봇대 불 빛 아래 쌓인 눈 위에 산 낙지가 꿈틀댄다. 강사 밥줄은 목구멍에 걸린 빨판이 살아있는 산 낙지였는가 보다.

 

 넷째 쪽에서 옥희는 두 남자를 사귀면서 일년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 갔던 기억을 편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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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이야기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다. 인물은 같은 배우가 비슷한 배경에서 연기한 다른 인물일 수도, 같은 인물일 수도 있다.  문성근이 연기하는 인물은 혼자 있으면 쓸쓸하지만 진구가 바라보면 송교수일 수있다. 영희에게 들이대던 또라이 학생 진구는 객기 부리는 감독 진구의 어린 시절일 수 있다. 어린 진구의 갑툭튀 구애에 진지하지 않았던 옥희는 영화감독 진구에게 관객이 던진 질문 속의 "연애가 깨진 뒤 폐인이 되었다는 여학생 "일 수도 있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인물들 사이에는 시간이 흘렀고 또라이는 여전히 찌질하고 뻐기던 여학생은 폐인이 되도록 몰두했는가 보다.

 

네 이야기의 교집합 중 두 남자의 사랑과 관계에 대한 태도에 대해 같은 것과 다른 것을 옥희의 눈으로 구성한다. 네 번 째 쪽의 구성 아이디어는 새로워 보이나  성격, 에피소드가 피상적이어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의 병립에서 딱히 의미를 건지는 재미는 없다.

 

 다 아워스(메릴 스트립,줄리안 무어,), 에로스( 공리, 장첸)같은 여러 쪽 영화는 각각의 쪽 영화가 기획부터 분리되어있거나 작은 스토리로 분리하기로 기획하여 한 테마아래 독립성과 공통성을 추구한다. 관객은 독립된 이야기를 보면서 주제, 의미를 변주, 확산한다 . 옥희...에서 주제를 잡아내기 어렵다. 주제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들킨 듯 킥킥거리다 보면 몇 개의 정지된 사진만 남을 뿐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각각의 이야기는 배경과 분위기가 유사해서 관객이 연결, 분리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느슨함이 특징인데 , 치밀하게 관객 몫으로 계획된 느슨함이 아니라 느슨한 작업의 결과이기 때문에 관객이 욹어낼 콘텐츠가 없어, 장점이랄 수는 없다.

 

 홍상수 감독의 지난 영화에서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변두리 먹물의 맨 얼굴 훔쳐보기.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 - 팔리지 않는 작가, 작업거리 없는 영화감독, 남학생과 말 싸움하고 여학생과 섹스 하는 교수, 연극배우 등등. 그들은 외곽에 존재하고 초대받지 못한다. 그들이 먹물들로 자기 분야에서 고민하지 않는 것인지 홍상수가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여자는 남자의 미래, 생활의 발견, 첩첩산중 등에 공히 複數의 관계가 등장한다. 다가오는 자, 다가가는 자가 보이는 우쭐함과 찌질함, 배반을 배반으로 인식하지 않고 나와의 관계, 타인끼리의 관계 손상에 무심함, 진지하고 소중한 것 예를 들어 사랑, 약속, 기대 같은 것에 대한 냉소적 시선 또는 킥킥거림.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뭔가 중요한 것이 결핍되어있다. 결핍의 종류와 원인은 다양하다.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나중에 따져볼 테니....) 결핍이 그들을 사회적 관계의 외곽에 존재하게 하는 원인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생활밀착형 인물의 성격과 표현등 이전의 영화와  유사한 것들이 옥희의 영화에서도 계속된다. 

 

그런 반면 계속 보였으면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돼지>에서 동기들에게 왕따된 소설가와 < 옥희>에서 동료들에게 초대받지 못한 진구는 먼저 취하고 술자리에서 객기 부린다. 소설가의 객기와 분노는 관객을 공감시키고 울림을 퍼뜨린다. 그에 비해 진구의 객기는 그의 팔랑귀와 찌질함에 킥킥 웃게 할 뿐 관객에게 주는 울림이 없다. 에피소드에 터뜨릴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복수의 관계 속에 있으며 배반을 배반으로 인지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기대가 엇갈려 관계가 기울거나 모호하거나 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로 인한 남의 고통에 무감하다. <돼지>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A에게 사랑을 청하고 B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못하는 관계로 물려 있다. 등장인물들은 모호하게 이중 관계를 즐기고 끌다 파국을 맞기도 한다. 영화는 관계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균형을 유지하며 세심하게 보여준다. 등장인물간 관계의 짜임새가 정밀하고 탄탄하다. <옥희>를 보면서 관계와 에피소드가 이미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첩첩산중>이었다.

단편 <첩첩산중>은 빼고 넣고 할 거 없이 쫀쫀한데, < 옥희>는 설렁설렁하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관계에 우연이나 욕망이 약속에 우선한다.

<여자는>에서 성현아의 미국으로 떠나갔다가 돌아온 옛 애인 김태우는 말없이 떠나있었음을 과장되게 사과한다. 과장되었기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않는 아이러니. 성현아가 너를 무척 기다렸다고 김태우에게 일러주던 유지태는 대취한 김태우가 옆 방에서 자고 있는데 성현아와 잠자리를 한다. 성현아와 유지태는 마음에 차마 삼가함이 없고 행동에 아무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 김태우도 그다지 화내지 않고 성현아가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유지태는 같은 날 제자와 여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무도 진지하지 않다. 그들 사이에는 가벼운 흥미와 미련뿐 감정의 교류나 후회, 분노는 없다. 알려고 들지 않으며 무감각하다. 그 결과 그들 사이 관계는 녹아내려 떨어진 유빙처럼 각각 흐른다.

 

  욕망의 꼬리를 놓지 않고 우연에 몸을 맏기고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모호하게 행동한다. <생활>에서 김상경, 선배, 예지원, 추상미는 모두 모호한 흥미와 충동을 따라간다. 이미 형성되어있던 관계는 상대에게 감추었거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걸 담은 <여자는>의 농도랄까 속도랄까는 <돼지>보다 밍밍했다.  <옥희>는 그보다 더 묽다. 아마도 이야기가 극적이기보다 4쪽의 일기같은 평면성 때문이고  학생 진구에서 감독 진구로 건너뛰고 튕기는 옥희에서 폐인 옥희로 변하는 시간이 공백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홍감독은 앙상한 에피소드에서 흐릿했던 관계의 같고 다름을 옥희의 내레이션으로 평면적으로 요점 정리하듯 펼쳐보인다. 대놓고 하는 과외공부 족집게 방식이다.

 

 <돼지>, <생활>, <여자는>에서 보이던 관찰력 재현은  <옥희> 에서는 무뎌졌다.

그럼에도 인물과 대사가 생활밀착형이고  한 연기씩 하는 배우들이라 학교 주변의 보통 날들을 보통 날처럼 살아냈다.  정유미의 연기는 반짝거리고 이선균의 연기는 좀, 물린다. 구성이 엉성하니 감독은 우연에 기댄 듯 보인다. 내공 높은 화가는 붓 한번 휘둘러도 작품이 된다지만, 홍상수감독 이번 영화 너무 쉽게 만든 듯하다. 혹은 영화만들기를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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