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6 00:19
박정희 일 군관 혈서 지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11/h2009110522204021980.htm
-앞부분 자름-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경북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 군관에 지원했으나 연령 초과로 탈락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호소하는 편지를 동봉해 지원서류와 함께 1939년 재차 응모했다.
기사에는 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고 썼다"며 동봉된 편지 내용을 설명했다.
-뒷부분 자름-
MBC의 짧은 보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1105222012211&p=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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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게는 알려져 있는 "다까기 마사오"라는 이름 외에 한국식 이름임을 지우기 위해 일본으로 국적을 바꾸면서 지은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있다. 성을 간다는 건 부모를 부정하고 자기 근본을 포기하는거다. 그는 견마의 길을 통하여 권력과 영광을 계획하며 자기부정이라는 치욕을 택했다. 불확실한 시대에 확실한 권력과 영광을 위하여 "변성명"과 "견마의 충성을 맹세" 하여 스스로를 권력의 도구화하였다.
그가 혈서을 썼던 당시의 일본 군사은 국가확장의 이데오로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첨단은 군대였다. 국가 확장 이데오로기의 도덕성 비도덕성에 대한 의심하지 않는다, 정복과 피정복 사이의 피와 고통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그저 권력 구조의 일부이며 도구가 되기를 바랄 뿐.
왜? 그에게 그런 질문은 없다. 그에게 승자는 언제나 옳으니까.
국가는 인간이 안전하게 보호받고자 선택한 틀이다. 인간이 자기 결정권을 행하며 살게 하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지 인간이 국가를 위한 도구나 방법이 아니다. 틀이 과대하여 틀 안의 구성원을 압박거나 틀의 유지, 확장을 위하여 구성원이 희생하여야 한다면 틀은 필시 군사국가이거나 부패권력이거나 다수의 부정과 배척으로 인하여 소멸할 이데오로기에 사로잡인 국가이다. 그는 국가 우선주의, 권력의 당위성에 의문가지지 않고 권력제일주의를 믿었다고 보인다. 국가권력의 중심이 바뀐다면 (예컨데 일본이 미국 또는 러시아에게 합방된다면) 그는 새로운 중심권력에게 견마의 충성을 서약하는 혈서를 쓸 인간형이다. 러시아식 이름도 짓고.
자신을 목숨이 주인에게 달린 가축(犬馬)으로, 뼈가 부러지도록 가죽까지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는 그의 인간에 대한 사고방식은 어떻하였을까. 어떤 성향의 사람이 저런 맹세를 하는가.
자식에게 견마의 효도를 요구하는 부모는 없다. 부모가 마소같이 육신을 움직여 자식을 거둬먹이는 희생은 자식에게 고통이다. 마소같이 일방적 희생과 노력이 남녀간에 요구되고 제공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고 노예와 주인의 관계이다. 군신간에도 마소의 충성은 아니다.
왕이 실성하지 않은 한, 옳은 말을 諫.하는 신하를 귀히 여긴다.
국가 우선주의하에서는 인간이 목적이 아니고 도구이기 십상이므로 권력을 위한 생산이 없는 인간은 훼손하거나 제거한다. 동시에 권력자는 자신이 제거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권력의 안녕을 위하여 많은 사람을 제거 할수록 자신이 제거될 위험도 높아진다. 위협과 위험의 악순환이 확대된다. 의심은 시선의 기본이고 추적은 일상화된다. 내 편과 반대편으로 나눌 뿐이며 상대방과 타협, 합의는 불가능하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 선 1961년 이후 1979년까지 정치, 국방, 사회, 교육 어디고 간에 권력 유지를 위한 통치 편의주의, 승자로서의 국가 우선주의, 도구, 방법으로서의 국민 나중주의가 확연하다. 여성인권이라는 개념은 그에게 싹도 나지 않았다. 여성은 도구였고 수단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는 역사속에 희생이고 배상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아내, 가족도 별다른 인격적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멸사봉공이라는 말은 국가 제일주의라는 설탕을 슬쩍 발라 포장한, 인권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모든 권위에 대한 질문을 막았으며 권력에 역행하는 인물을 협박, 제거하는 것으로 자신의 안전을 강화하여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감시, 납치, 처단, 군대, 교복, 훈시, 교련, 교련복, 까까머리, 귀밑 일센티, 국민교육헌장,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일사 분란, 멸사봉공 슬로건, 강제된 온갖 궐기대회, 오만가지 행사에 국민 동원,... 군복무를 납세보다 더 무거운 의무로 세뇌하였고 강제하였다.
군국주의-> 국가우선주의-> 군복무------------>>>>>>>로 이어져 온 틀이 소수를 제외한 모두에게 지금도 작동하기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탈세에 분노하기보다 병역 회피에 분노한다.
알려진 사실과 내 상식으로 구성해 본 박정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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