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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난 번 보다 기억력이 나빠지신 듯 하다. 딸 이름을 물으면 한 참 걸려 이름을 기억을 하지만 나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엄마 딸이야 하면 그러신가 보군요 하신다. 큰 아들, 작은 아들 이름을 물어본다. 글쎄, 뭐더라...몰라요, 잊었어요,  하신다. 기억 못해 부끄럽기도하고 묻는 게 귀찮기도 한 표정이 스친다. 손자이름을 대며 누구 아들이지? 하면 걘 내 아들이죠 하신다. 엄마의 시간에 이름들이, 관계가 새겼던 흔적들은 다 녹아내려 흐려졌다.

 

기억의 exercise를 위하여 나는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 엄마 뭐 뭑고 싶어? 짜장면? 짬뽕? 탕수육? 하며 중국집 메뉴를 불러대기도 하고 불고기? 잡채? 산적?하며 한식 요리 이름을 대기도 한다. 엄마는 그거 좋지, 그거 맛있지...하며 즐거이 반응한다. 그러다가도 시금치국? 토마도? 하고 물으면 반드시 그건 싫어... 하신다. 평소에 안드시던 거다. 자식들 이름은 흐려졌어도 즐기고 멀리하던 음식의 맛은 즉각적으로 기억하고 반응한다. 엄마 옛날 주소가 뭐였지? 물으면 그 오래된 엄마 친정 운니동, 계동 주소를 기억해 낸다. 지금까지 녹지 않고 남은 조각들은 엄마가 차곡차곡 접어 거두고 있는 삶을 구성했고 엄마는 그것을 가장 늦게까지 품고 있는 거 아닐까.

 

아무 이야기나 건네고 묻고 아무 답이나 받고 있다보면 기억운동이 되어 엄마가 다 삭아 끊어질 듯 약한 실로 기억을 엮는게 느껴진다. 20년 전의 일이 몇 년전 일과 나란하고 그 사이는 뭐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의탁하는 기억의 망이다. 아마도 내가 가고 엄마만 남으면 다시 기억의 진공상태로 들어가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