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엄마생각 2012. 3. 30. 00:56

 큰애 친구가 며칠 자고 갔다. 술자리 끝에 자고 가던 대학 친구로 부산에서 올라와 자취한다고 했다. 친구엄마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 애는 내게 말도 잘 걸고 우스개소리도 잘 했다. 작년 언젠가 놀러와서, 어무이, 저 대리 달았십니다. 쫌 일찍지예 하고 자랑하기도 했다. 들어가기 어려운 유명 회사에 다니는데 거기서 진급까지 빠른 걸 보니 친화력이 한 몫하지 싶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몇 달 파견근무 하다가 휴가 왔는데 서울서 휴가 며칠 지낼곳이 마땅찮아 우리집으로 왔다고 한다. 어무이, 꿀 좀 드리까예 사우디 꿀이 좋답니다 딴 거 사올 꺼도 엄꼬. 부산 어머니 갖다드리지 왜 날 줘 하니 어머니껀 또 있심다 한다. 근데, 이런 거 가지고 다니는 거 보니, 너 아저씨 다 됐구나 하니 딴 친구들은 머 아(아기)도 있는데예, 지도 아저씨입니다~ 한다.

 아이들이 대학 초년생일 때 처음(?) 술을 배운 친구들이 취한 끝에 집에 몰려와 자곤 했다. 아침에 현관에 신발이 그득하여 아이 방 문을 열어보면 몇 녀석이 술냄새, 숨냄새 팍! 풍기며 대충 깔고 덮고 엉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고 마음이 푸짐해지곤 했다. 취한데다 한밤중에 조용히 들어오느라 이부자리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하고 쓰러져 잤던 거다. 배게, 이불 가져다 덮어주면 오그리고 자던 아이들 몸이 우쭈쭈~ 펴졌다. 재빨리 가게 다녀와 아침 반찬 좀 만들고 아이들 먹일 국물거리 끓이는게 좋았다. 아침겸 점심을 차려주면 아이들은 잘 먹었다.

 큰 애와 친구는 나가더니 밤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다. 빈 방에 이불, 요를 넣어주었다. 조용한 아침, 기척이 없어 안들어왔나 싶어 문을 살짝 열어보니 한 녀석은 침대에 한 녀석은 이불을 깔고 요를 덮고 자고있다. 아침을 차려주려니 어무이, 나가 묵어야 됩니다. 사무실에도 드가 봐야 하고요 휴가가 며칠 안되 스케즐이 짜악 있심다. 왜 이불을 깔고 요를 덮고 잤니? 하니 그렇게예, 어째 요가 좀 푹신하고 이불이 좀 좁다 했씸다 ㅎㅎ.

 나도 학교다닐 때 간간이 외박했다. 대학때는 친구 집에 몰려 인생에 대해 토론하고 나라 걱정하다보니 통금을 넘기게 되었던 거다.(?) 친구만의 독방이 있고 담배피워도 뭐라는 어른 없어야하는 조건을 갖춘 친구는 둘 정도였는데 그 중 아버지 외근이 잦은 집이 단골. 그 친구어머니는 경제적 여유도 있고 음식솜씨가 좋아 아침상이 푸짐했다. 살림 도와주던 순이가 상을 차려 방으로 들였고 친구는 순아, 상 내가고 마실 물 좀 줄래? 했던 말투가 생각난다. 그 친구의 아버지 초상때 친구 어머니를 뵙고 몇년이 지났다. 그 친구 어머니에게 인사드리러 가야겠다.

 고등학교 1학년 방학 때 친구네 고향집에 놀러갔다. 옥천. 친구 아버지는 남녀유별하고 장유유서하고 가문성씨 따지는, 안방 아랫목에서 외롭게 독상 받는 분. 여자들에게는 그 상 물린 다음에 차례가 왔다. 막내딸 친구인 내가 그 집 분위기에 맞게 절로 인사를 드렸다. 친구 아버지는 거기 앉아라 했다. 무릎 꿇고 앉았다. 이름이 무어냐, 김아무갭니다. 무슨 김씨냐, 연안김씹니다. 무슨 무슨 파 몇대손입니다....아버지는 뭐하시냐 묻기에 증조할어버지는 뭘 지내시고 할아버지는 뭘 지내시고 하셨습니다....했다. 나의 대답이 어른 맘에 들었던가보다. 난데없는 질문을 받았다. 공화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대답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다음해 방학 때 또 놀러갔다. 전에 했던대로 친구아버지에게 절을 했다. 거기 앉아라 말씀에 무릎꿇고 앉았다. 이름이 뭐냐 묻기에 김 아무갭니다. 무슨 김씨냐...전년도와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다가, 작년에 다 말씀드렸는데요 했다. 그때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 그랬는데 몇 년 지나고 자식 키우고 나이먹고 나서야 아, 그러는게 아닌데....깨우쳤다. 친구아버지가 막내딸 친구들을 기억할 리가 없다. 게다가 친구는 11남매의 막내! 머리 쓰다듬고 싶은 꼬맹이들과 말 나누고 싶고 생각은 어떤가 궁금해서 물었던건데, 그러니 내가 말동무해드렸어야 하는 건데.

 고등학교 때 친구 하나는 전교 일,이등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그 친구네 집에서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형제 여럿인 친구네는 방이 부족해 방 하나 딸린 빈 점방을 얻어 친구와 언니가 지내고 있었다. 친구와 밤샘 공부한다니까 언니는 집으로 들어갔다. 길가에 면한 미닫이 유리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가면 한 두평쯤 될 진열대 놓였던 시멘트 바닥이 있고 다시 나무창살 유리 미닫이을 열면 방. 앉은뱅이 책상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접히는 다리 달린 밥상을 펴고 앉았던 거 같기도 하다. 기억이 없는 걸로 보아 공부는 안했던가 보다. 뭘 하고 밤을 지냈더라...난 아마 잤을거고 전교 우등인 친구는 밤을 샜을라나...

 아침에 방 문을 여니 헝겊 덮인 소반이 바닥에 있었다. 따뜻한 밥, 배추된장국, 갖 구워져 아직 온기있는 고등어 한토막. 기름기 돌면서 바삭바삭했던 푸른 고등어 껍질. 싱싱하고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가 고3이었고 학교가 멀었으니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시간에 맞춰 고등어를 구우셨으리라.... 친구네 집에서 점방까지 골목 나와 큰 길 건너야했는데 밥 식지 말라고 친구 어머니는 소반을 얼마나 꼼꼼히 싸메셨을까. 나이들면서 헤아리게 되었고 그때 온기, 그 맛이 뚜렸해졌다. 그 어머니 초상때에야 좋은 식당에 한 번쯤 모실걸...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친구들도 결혼하고, 직장다니고 하니 나가먹지 친구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다. 어쩌다 오는 넘들, 챙겨 먹여야겠다. 그게 세월에 관계없이 좋은 거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