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엄마생각 2011. 8. 13. 04:34

 가족들이 모여서 저녁 한 끼를 함께 하기 쉽지 않다. 회식, 약속, 어긋나고 불규칙한 스케즐, 아니면 다이어트. 주말 네 끼중 두 끼는 함께 하기로 정했지만 그도 쉽지 않다.  함께 자리하려면 무슨 이름 있는 날 식당 예약하듯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밥상머리 대화가 줄어든다. 시간을 함께하고 이야기를 함께 엮는 게 가족인데 같이 엮을 시간이 없다. 가족과 밥 먹는 것이 그 자체로 중요하고 기쁜 일인데 가족은 늘 거기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각자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익사이팅한 일이 많아서인지, 젊은 아이들에게 가족과 밥을 먹는 건 중요한 무언가를 하는 사이 사이에 엄마가 하라니까 해 치우는 일 처럼 보인다. 

 함께 밥 먹는 시간이 드믈어지니 소소한 가사의 분배, 책임감도 느슨해 진다. 일상적 친밀함도 때때로 소원해 진다. 우리 몸을 이루는 음식이 여기 오기까지 자연의 조화, 그걸 누릴 수 있게 된 데 대한 감사, 식탁을 준비한 이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 맛있는 것을 먹는 기쁨, 그런 것을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시간을 쪼개 써야하는 경쟁적 현대 도시 살이에서 가족과 식탁에 마주앉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 된장, 고추장, 김치도  전도 나물도 살만 발라 포장된 생선도 다 살 수 있고, 함께 다듬고 지지고 볶을 스토리의 앞부분이 뭉청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수확과 조리를 하는 행복한 명상의 순간 대신 지불하고 포장을 뜯으면 되는 거래의 시간을 살기 때문이다. 이미 흘러온 길, 모두 수확과 조리를 해야하는 시절도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생선살 한점, 콩 한알이 내게 오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력을 기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어릴 때 배운 어른 숟가락 들기 기다려야 하고 어른 다 드시기 전에 일어나지 않는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뚝딱 먹고나서 일어나면 끝. 각자 밥그릇 싱크대에 넣으니 그거나 고마워해야 할까. 

  아래는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을 읽다가 만난 구절이다.
  원시 집단 사회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 다는 것은 집단 내에 연대, 결속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사회적 행위이고 개인에게는 귀속감, 책임감을 갖게하는 개인과 집단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적 행위인데, 그것을 문명한 현재 우리네 가정과 사회에 도입해 적용해도 옳은 말이다. 이 구절을 아이들에게 이메일로 보내 읽게 하려다가 말았다. 뻔한 이야기를 일부러 들려 준다고 퇴박 맞을까 싶어서. 

    <<갓난 아기가 세계와의 사회적 관계를 가장 빠르게 확립해 나가는 것은 배고픔의 표현과 충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배고픔은 그 아이가 태어나서 구성원이 된 그 사회와 아이가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관계를 가장 전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영아시절과 유년기에는 식사와 양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러한 관계는 뒤에 가서는 변경될 수도 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어린 시절에는 양육을 하는 자들이 공급해 주는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며, 따라서 그들의 사회와 문화의 규칙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한 까닭에 영양 섭취와 미각은 엄청난 정서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가 먹는 것, 우리가 먹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형상학적인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런 사항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 즉 상대적 자기 인식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인류학은 처음부터 음식과 섭취에 관심을 가져왔다. 인류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롭트슨 스미스는 함께 먹는 일 자체를 하나의 특수한 사회적 행위로 연구하면서 (그는 희생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는 식습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식사와 관련하여 그는 공동 식사 commonsals 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신들과 인간들의 관계를 서술하였다). 신들이 인간들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는 일을 서로의 교제와 상호간의 사회적 의무들을 상징하고 확인하는 것이라 이해하였다. “함께 앉아서 고기를 먹는 자들은 통합되어 모든 사교적 효과들을 이루어내게 되며, 함께 먹지 않는 자들은 종교 안에서의 교제도 없으며 상호간의 사회적인 의무들도 떠맡지 않는 타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의 핵심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육체적인 행위에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단순히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이루어냄으로써 만들어지는 결속인 것이다.

일찍이 로오나 마샬은 자신의 논문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이 개인과 집단 안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를 생생하게 서술하였다. 그녀의 보고에 따르면 쿵 부시맨들은 싱싱한 고기가 생기면 언제나 곧바로 달려들어 먹었다고 한다.(그렇게 하게 되면)’굶주림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게 된다. 함께 먹은 사람 역시 나중에 고기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상화간의 의무의 그물망으로 지탱되고 있다. 굶어도 함께 굶으며, 가진 자들과 자지지 못한 자들의 구분이 없다. 어떤 사람도 혼자가 아니다함께 먹지 않고 혼자 먹는다는 생각 자체가 쿵족에게는 아주 충격적인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들은 아주 어색하게 웃으면서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사자들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경향 신문 이문재의 글은 우리를 이루는 먹거리에 감사하며 함께 둘러앉아 먹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02149215&code=990000

     <<젓가락 잡는 법이 제각각이었다. 포크만 쓰는 아이도 있었다. 앉은 자세도 다 달랐다. 콩으로 만든 스테이크가 나왔다. 넷이 달려들었다. 비빔국수를 시킨 세 아이는 더 기다려야 했다. ‘맛 한번 볼래’라고 권하는 아이가 없었다. ‘맛 좀 보자’며 다가앉는 아이도 없었다. 네모난 명찰을 하나씩 달고 있는 걸 보니, 방학을 맞아 무슨 캠프에 참가한 초등학생들 같았다.

지난 일요일 오후, 집 근처 콩요리 전문점에 갔다가 목격한 장면이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소란을 피운다는 빤한 얘기를 꺼내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몇 분 동안 지켜본 아이들은 산만하기는 해도 천방지축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팠는지 제대로 씹지도 않았다. 면발은 거의 들이켜다시피 했다. 잠시 후,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 나갔다.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지만,식탁은 어수선했다. 몇 분 사이에 식탁이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이 가장 자주 앉는 자리가 식탁이다. 누구나 하루에 두세 번은 앉는 식탁. 하지만 식탁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식탁은 어디에 있는가. 식탁에 무엇이 오르고, 식탁에는 누가 앉는가. 식탁은 부재로써 존재하는 이상한 ‘장소’처럼 보였다. 식탁은 더 이상 집안의 중심이 아니었다. 이야기가 빚어지는 삶의 자리가 아니었다. 식탁은 일과 일 사이에 있는 ‘경유지’에 불과했다.

내가 대중음식점에서 마주친 초등학생만한 나이였을 때,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촌아이였다. 주방이 아니고 부엌이던 시절, 그러니까 식탁이 아니고 밥상이던 시절. 아버지의 헛기침으로 시작되던 저녁 밥상은 훈육시간이기도 했지만, 저마다 주인공이었던 하루의 이야기가 오가던 소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과 달리, 밥상에 오르던 음식의 재료는 굳이 ‘원산지’를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 우리 가족이 땀흘려 가꾼 것이었다. 밥상에 모여드는 식구 수도 일정했으며, 밥상 차리는 시간도 변함이 없었다.

개수대가 싱크대로, 밥상이 식탁으로 바뀌는 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 세대 사이, 시골 소년은 도시의 젊은 아빠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젊은 아빠는 식탁에서 할 말이 거의 없었다. 할 말이 있더라도 어릴 적 들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많이 먹으라’고 당부했지만, 나는 아내와 함께 ‘많이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야 했다. 내가 권하는 음식은 아이들에게 혐오식품이기 십상이었고, 내가 금지하는 음식들은 아이들의 ‘기호식품’이었다. 게다가 네 식구가 함께 식탁에 앉는 경우도 드물었다.

유난히 입이 짧은 아들내미에게 꾀를 냈다. 내가 식탁에서 자주 중얼거리는 ‘이 음식이 어디서 오셨는가’라는 사찰의 공양게송을 응용했다. 이 배추는 누가 키웠을까, 이 고등어는 누가 잡았을까, 이 쇠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아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상상을 하며 답을 했다. 아이는 식탁에 지구 전체가 올라오고 있으며, 들과 산과 바다에서 우리 식탁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산업문명 시스템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가 기업형 화학농의 문제점이나 소규모 가족농의 장점을 설득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도는 단순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는,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식탁에서는 음식을, 부디 음식만을 생각할 일이다. 음식이 ‘나’이고 세계이다. 음식은 과거이자 미래다. 식탁에 앉으면 다 보인다. 식탁이 ‘U턴 지점’이다. 우리가 식탁에서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문명의 가까운 미래를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가 밥 한 술을 들면서 햇빛과 땅과 비와 바람과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