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광고 싫어하는 광고
티브이를 보면 광고를 피할 수 없다. 무심히 보고 넘기지만 가끔 채널을 돌리게 하는 광고도 있고 보며 웃게 만드는 광고도 있다. 광고가 퍼져 새로운 생활 스타일을 형성하게 만들 파급력이 세 보이는 것도 있다.
나에게 좋은 광고가 어떤 건지 나쁜 광고가 어떤 건지 말할 안목은 없다. 아마도 광고전문가의 판단이 있을거고 광고주가 원하는 바가 담겼냐도 한 기준이 될 거고 이도 저도 아니지만 대상 인지도 증대, 이미지 개선, 매출 증가 등 결과를 이루게 하여 평가 받는 광고도 있을 터. 나는 소비자로, 보아서 즐겁고- 스토리, 그림, 광고문구, 모델을 모두 포함해서- , 그래서 상품을 기억하게 하면 좋은 광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표현은 새로워야하고 스토리는 개성적이어하고 무엇보다 개념이 마땅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광고는 e편한 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시리즈다. 과거 아파트 광고는 대개 화려한 여배우가 삼페인 들고 호화 배경에서 파티하는 이미지 광고였다. 네모 상자 포개놓은 아파트를 무슨 캐슬이라 이름 짓고 프랑스식 정원에 양복에 드레스 입고 뛰어노는 백인 아이들 보여주며, 당신도 상류사회를 동경하죠? 저기 살면 저렇게 될 수 있어요 하며 현실과 무관한 환상을 덧씌우고 허영을 자극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사는 래미안이야, 나는 자이에 살아, 하며 소유/사는 곳으로 우월감을 갖게하고 물질적 우월감과 虛影을 부추기며 광고 속 모습을 현실의 나와 착시하게 유도하는 광고였다. 그것을 사람들의 머리에 반복적으로 투사하여 브랜드와 넌프랜드(non brand)사이에 경계를 형성한다. 그 경계가 강해지면 세속적 층위가 형성된다. 바람직하지 않는 조작이다. 그런 류 광고의 종결자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카피일 거다. 언제 인격이 아파트 브랜드 따위로 판단되게 되었는지?
e편한 세상의 광고 진심이 짓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 광고시리즈가 허영과 동경과 (그것을 가지지 못하여) 안달난 마음을 건드리는 광고틀을 버리고 아파트-몸이 쉬고 마음이 깃드는 곳이라는 당연한 그러나 새로운 개념을 펼쳐 보인다는 점과 대상 아파트의 구체적인 장점을 다양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 장점들은 자연친화적 에너지 생산과 절약을 도와주는 설비에 관한 것이거나 사소해 보이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개선 아이템에 관한 것이다. 이 광고시리즈는 광고 대상물과 광고 영상이 따로 놀지 않는다. 실제 상품에 대한 깊은 이해, 이전 상품과의 차별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나올 수 있는 필름이다. (광고된 아파트가 실제로 광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보면 웃음짓게 되는 광고가 있다. 관리비 청구서를 들여다 보던 평범한 아주머니가 환경이요? 살기 바쁜데 그거에 무슨 신경을 써요?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심드렁하게 대답 하니, 하얀 토끼인지 아기 백곰인지가 중성적이고 코믹한 목소리에 모노톤으로 넹, 관리비 돌려드립니당~~~~비씨 그린카드~~~~~하는 광고다. 아저씨 버젼도 좋다. 버스로 출근 중인 아저씨가 피곤해 죽겠는데 환경보호요? 개뿔, 그거 신경쓴다고 차비가 나옵니까? 냉소적이며 무심한 말투에 넹, 차비 내 드립니당~~비씨 그린 카등~하고 하얀 동물이 대답한다. 주부, 버스 타고 출퇴근길의 보통남은 연기를 한다기 보다 다큐 필름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럽다. 광고 내용은 포인트를 적립해 드립니다, 현금처럼 쓰세요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인데 이 광고는 그토록 현찰적(?)이지 않고 카드 사용의 댓가가 생활에 구체적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을 유도할 뿐아니라 환경에 도움을 준다는 기분을 갖게 한다.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동물의 목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웃긴다.
요즘은 안보이는 올림포스(로 기억함) 카메라 광고도 좋아했다. 사람 몸에 카메라를 넣어 탐색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암을 조기발견하기 시작하였고 더 많은 사람을 병으로 부터 조기 발견 하게 하겠다...우리의 탐험은 멈추지 않는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카메라가 가까운 (나무?)한 지점을 보기 시작하고 푸른 숲으로 이동하고 물길을 찾아내고 푸르고 건강한 지구의 한 지역을 대기권에서 바라보는 화면을 보여주는 광고다. 우리 눈 높이의 나무를 가까이 보다가 점점 멀리 조망하여 숲, 그다음 지구 전체를 담는 것과 인체의 작은 부분을 탐색하여 생명을 돕는 연관관계 설정이 좋았고 짙은 숲과 강이 아름다워 늘 광고가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였다. 이것은 (제품)광고 이상의 어떤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박카스 광고는 대개 다 좋다. 피곤한 배우가 차의 뒷자리서 졸다가 대본만 읽으면 잠이 싹 달아나 하던 배우편과 영화 촬영 현장에서 녹음 기사가 마이크 떨어뜨리는 편은 코믹하고 실제적이어서 좋았다. 그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가 편은 노동 외부자의 시간외 근무에 대한 피상적 감상만 담은 듯 리얼리티가 약했다. 혼자 야간 작업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공장 사장이 박카스로 고마워하는 것은 구태, 식상,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패드(아이폰인가)광고도 늘 좋다. IT제품이자만 기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의 구체성을 온기있게 담고 다양한 연령, 직업에게 이 기기가 어떤 의미를 촉발하는지 삶을 어떻게 다르게 이끄는지 멋지게 드러낸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밝고 사랑스럽고 화면은 섬세하다. 다양한 인물과 직업과 관계가 나온다. 부모, 아이들, 교사, 의사, 음악가, CEO...그들을 다 담을 수 있도록 카피는 함축적이고 문장은 리드미칼하다. 기기를 쓰면서 우리는 책에 빠지고 저녁을 요리하며 경기를 본다. 부모는 쓰기 쉽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고 음악가에게는 영감이고 의사에게는 혁신이고 우리에게는 시작일 뿐이라는 카피는 멋지다. 제품만큼 필름도 카피도 창의적이고 세련되었다. 배철수의 목소리도 딱이다.
보기 싫을 뿐 아니라 광고는 현실을 담거나 현실을 리드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우려하게 하는 광고가 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햄버거 광고다. 친구들과 파티는 햄버거가 좋다는 게 보여주려는 내용일 것이다.
별 특징 없는 연한 얼굴 보통 체구의 젊은이 혼자 친구들 먹을 햄버거, 콜라 등을 가득 담은 쟁반을 양손에 가득 들고 주변에 무심한 다른 손님들이 부주의하게 오가는 사이를 묘기를 부리듯 지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친구들은 누구하나 일어나서 쟁반을 받으며 도우려는 표정이 아니라 쏱을까봐 놀라는 표정일 뿐이다. 매장안의 손님들은 쟁반 가득 먹을 것을 든 청년을 요리 조리 피해 갈 뿐 그가 안전하게 지나 갈 공간을 양보하게나 지나갈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 광고에서 파티가 보이지않고 왕따, 비협조, 무관심, 무례함, 부주의가 보인다. 여러명 친구들은 탁자에 둘러 앉아 햄버거를 기다릴 뿐 일을 나눠서 하지 않는다. 친절은 동등한 입장에서 또는 강한 측이 약한 측에게 배려하는 거라고 보면 약한 측이 다수, 강한 측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비굴이기 쉽다. 그는 왕따인가, 아랫급인가. 여럿이서 연약한 한명을 부리는 강압인가. 안전불감도 보인다. 광고에서 보이는 묘기와 주변에 무관심한 손님들의 직진를 흉내내다가 다칠 수도 불쾌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현실이 광고속 인물들의 태도만큼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는데, 광고가 현실을 그렇게 리드할까 걱정된다.
유니클로. 지리한 광고다. 연기는 드믈고 주로 광고를 찍는 여배우가 혼자 스툴에 걸쳐앉아 멘트를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듯기 어렵다. 빠르고 무게없이 대사치다가 억양이 툭 꺽이고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생각을 말하려는 연기겠지만 오히려 작위적으로 들린다. 굳이 알아들을 흥미도 없지만 여러번 보니 뭔 말인가 싶었다. 문장은 상투적이고 의미는 빈약하다. 자주 보여 여러번 보았지만 뭘 광고하는건가 싶었다. 개념 캠페인도 아니고 특정 상품, 브랜드나 기업이 드러나지 않는다.
알바할 사람들이 오고 갈 알바천국이라는 광고는 단순하고 씁쓸하다. 알바와 천국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아이러니하다. 불안정하고 대접 못 받는 알바일자리가 천국일 수 없는데, 고단하고 불안할 알바생 이름이 천국이인 것도 씁쓰름하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알바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이지만 혹여 알바천국이 알바의 문제를 해결하는 곳으로 오해할까 걱정된다. 거리에서 나눠주는 광고지 비슷해서, 굳이 수준을 따질 광고는 아니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정도만 보자면 알바천국이 유니크로의 할애비다.
기업의 실체와 동떨어진 이미지 광고를 보면 코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이 미래다 하는 두산광고를 보면 그렇다. 중앙대학을 두산이 인수한 후 돈되는 과는 남기고 돈 안되는 인문계열 학과는 통폐합했다. 대학은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캠퍼스, 건물 등 하드웨어가 삐까번쩍해도 사람이 없으면 대학이 아니다. 통폐합에 항의하는 학생과 교수들에게, 니들은 대학의 주인이 아니다. 대학의 주인은 재단이다 라고 말해 하드웨어적 사고를 드러낸 박용성 두산 회장을 생각하면 사람이 미래다를 돈이 미래다로 바꿔야 할 듯 하다. 그게 싫으면 땅이 미래다로 바꾸던지.
두산 기업 광고는 소통을 위한 광고가 아니라 자신(기업)을 사회적 멘토 위치에 놓고 대상을 계몽하려는 광고다. 젊은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테마로 시리즈로 나오는 광고의 카피는 대체로 말장난 스럽다.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를 선택하겠다면 그 생각이 옳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정직과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 (취업하려는 젊은이에게)"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공자님 말씀이다. 그러나 말을 뒤집으면, 니들 성공이래도 부끄러운 성공이기 쉬워. 부끄러운 성공보다는 실패가 낮잖아? 니들 잘못 있어, 잘못을 인정하라고, 정직과 용기가 없어. 있으면 정직과 용기를 보이라고. 니들 부족해 그러니 노력하라고...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그러니 취업이 안되지. 너 개인 탓이야...
광고 멘트는 대상(젊은이, 시청자)은 기본적으로 "결핍"하다는 사고를 깔고있다. 그러니 결핍,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다. 실패는 개인적인 부족함이라는 사고의 틀을 시청자(젊은이들)투사하고 있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시청자를 가르칠 대상으로 내려다 보는 시선에, 초등학교 학생들도 칫!하고 말 도덕 교과서 같은 말투에... 오만과 가식과 위선이 느껴진다. 두산의 광고 문구를 듣고있다 보면 애들 하는 식으로 반사! 반사! 하고 싶어진다.
자기 고백이 위선적 훈계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법 아니던가. 두산을 위한 더 좋은 광고효과를 위하여 이렇게 바꿔보았다.
두산,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를 선택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기업만큼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 또 있을까요? 잘못을 인정합니다.
정직과 용기를 보여주는 기업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산의 철학과 윤리와 역량은 부족합니다.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산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