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생각 2012. 8. 10. 18:56

결혼 9년만에 아기가 생긴 조카의 출산이 이달 말이다. 뜨거운 날 산전후 준비 잘 하라고 전화를 했다. 몸은 무겁겠지만 그나마 출산 전이 가벼우니 집으로 놀러 올 수 있으면 오너라 했더니 내일 갈게요 했다. 작은 아이에게 언니 올거다 하니 더운데 무리야 오지 말라 그래 한다. 오겠다 했어 하니 그럼 집에 에어컨 없다고 미리 알리란다. 얘네들에게는 에어컨이 무슨 숫가락이나 밥그릇 쯤 되는 모양이다. 우리집에 숫가락 없으니 네꺼 미리 가져오너라...그런 거냐.


나는 조카를 사랑하고 조카는 자랄 때 고모처럼 될래요 했는데 (뭘 모를 때 하던 소리) 결혼하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하니 행사때도 잘 못 본다. 고모도 이모도 여형제도 없는 나는 살붙이 여자들 사이의 관계와 밀도있는 주고 받음이 낯설다. 그럼에도 사람 좋은 작은 어머니가 내 혼수 이불 꾸미는 거 도와 주고 된장, 고추장에 쌈장까지 챙겨 주던 것, 시이모들이 남의 손에 자라던 우리 아이들 자주 들여다 보고 간식 챙겨주고 심심하지 말라고 강아지 보내 준 것 등이 삼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기있게 남아있다. 신혼집에서 밥 한 번 대접했을 뿐 작은 어머니 댁으로 찾아가지 않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셔서 고마움을 갚지 못했다. 친절하고 다정한 시이모들에게도 받기만 했을 뿐 고마운 마음을 표하지 않았다. 몰랐고 무심했고 때를 놓쳤고 마음 따로 행동 따로였기 때문이다. 내가 속으로 고마워하면 뭐하나. 그 양반들이 모르는데.


커텐 앞뒤로 다 내리고 냉커피에 찬 과일 먹으니 그럭 저럭 앉아있을만 했다. 햇빛에 타는 마당을 에어컨 바람 쐬며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는 '분리의 우아함'이 아니고 유리에 신문지 붙이고 그 안쪽으로 커튼 친 어스름 속,  폼 안나는 피서. 좀 뭣스럽기는 했다. 


내가 읽던 책을 들고 고모 이 책 읽으세요? 하기에 그건 끝냈고 이제 수탈된 대지 읽으려는데 책이 품절이네 했더니, 갈레아노 꺼요? 그거 제게 있어요. 빌려드릴 게요 한다. 서구에 의한 남미 수탈의 역사에 대한 조카의 공부와 내 관심의 공통점이 반가웠다. 게다가 십여년 전에 1쇄 발행했을 뿐인 귀한 책, 한달이상 온오프 다 뒤져도 품절인 책을 지척에서 구하다니 우연은 신기하고 행운은 기쁘다.


경제와 환경을 공부한 조카와 나는 공통된 관심거리가 많다. 조카는 이론과 참여로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여러가지 구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지속 공존 가능한 환경에 대해 연구하고 발표하고 나는 그런 기사를 간간히 읽는 정도지만. 조카나 나나 흙 좋아하고 화목 심고 거두고 싶어한다. 조카네 마당에는 동네 고양이 여러마리가 드난살이 하고 우리 집에는 집돌이 개가 산다. 조카는 환경 보호의 연장선에서 나는 가스, 전기값 압박 때문에 단열, 절전, 축전에 관심있다. 나는 관심 수준인데 조카에게는 실제적으로 유용한 정보가 많은 점이 다르지만. 여성의 역량 발휘에 걸림돌이 되는 사회적, 가정내 인습에 대한 불만도 공감하는데 조카는 조용히 정면돌파하고는 나는 곰처럼 힘으로 견뎌 온 점이 다르다.


젊은이와 대화하면 생기가 돈다. 신선한 화제, 다른 관점. 사람과 사안에 대한 쿨함, 여유, 당당함. 세대와 환경 의 차이가 잡힌다. 내가 상투적인 당부의 말을 반복하지 않는지 단정적으로 권위적으로 말하지 않는지 조심한다. 


조금 움직이니 끈적 땀이 배나온다. 데리고 시원한 곳으로 나가야겠다. 올 여름은 넘어 갔고, 내년 여름, 북극곰과 남극의 펭귄이냐 닫힌 공기 속 뽀송뽀송한 우아함이냐...아, 갈등된다.


이태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양산 받치고 그늘쪽으로 살살 걸어 지하철 역에 데려다 주었다. 돌아오고 나니 아쉽다. 반찬을 좀 더 해줄걸, 과일을 좀 더 싸줄 걸, 더운데 차를 태울 걸 괜히 식당까지 역까지 걸렸나. 자주 보는 애도 아니고 홀몸도 아닌데 좀 챙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