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나들이
나도 아이도 각자 이유로 스트레스 받고 있었고 아이는 집안에 무심했고 나는 피곤해하는 아이에게 야단을 쳤다. 며칠간 서로 말 안거는 불편한 상태.
말 안하던 작은 애가 요즘 핫한 식당에서 저녁을 내겠다 했다.
친지들과 가는 식당이나 술집도 친소와 분위기에 따라 몇군대로 정해져 있고 가족 모임에도 몇가지 타입이 있다. 그 유형을 벗어나는 곳은 목적한 바 비지니스가 없다면 큰 맘 먹어야 가게 된다. 새로운 식당 찾아다니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른바 뜨는 식당, 패션식당을 갈 일이 없다. 가던 데 가서 먹던 거 먹는 스타일이지만 누가 새로운 식당가자고 하면 좋다고 따라나선다. 이번에는 몰라서 따라 나섰다.
언제 생겼는지, 성수대교 내려 큰 길가. 마당있는 3층 건물. 식당 입구 부터 세련되고 멋드러진다. 1층은 커피숖, 2층은 bar 겸 레스토랑, 3층은 부티크 레스토랑이라 한다.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걸린 대형 유화가 고급스런 분위기를 만든다. 크래식한 벽, 단순한 몰딩, 조용히 반짝이는 샨드리에, 식탁의자 등이 우아하다.
아이가 예약한 메뉴가 이미 인쇄되어 테이블에 세워져 있다. 길다. 낮은 조명에 읽을 수 없었다. 서양 요리 긴 코스를 이름도 모르고 먹게되었다. 가격이 궁금했지만 아이는 그냥 "됐어~"하고 만다. 지가 낸단 말이지.
에피타이져 담은 용기가 대담하다. 메추리알을 짚위에 올리고 빵과 칩을 소나무 껍질 위에 담아 가을을 연상시킨다. 이쯤되면 요리 더하기 디자인이다.
요리마다 맵시있고 모양과 색의 조화가 뛰어나다. 싱싱한 재료를 단순히 다루고 다른 재료와 함께 놓아 자체의 맛과 재료간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싱싱한 채소가 밀집한 나무들처럼 서 있는 사이로 새우가 꼬리를 야하게 드러내고 머리를 모았다. 모양과 색깔에서 영화 I am love에서 틸다 스윈튼의 관능을 일깨워 절제와 규범의 생활을 깨고 나오게 만들었던 젊은 요리사의 새우요리를 연상했다. 영화속 요리에서는 새우가 꼬리와 몸을 꼬고 있었다. (별 걸 다 기억하네)
조미가 되었어도 소스가 주재료를 압도하지 않는다. 송로버섯 스프에서는 깊은 풍미가 났다. 나는 언제나 스프를 좋아하는데 이번 송로버섯 스프가 가장 좋았다.
지배인이 새 접시를 놓을 때마다 어디産 재료를 이렇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길게 설명한다. 그때마다 이야기가 끊긴다. 색과 맛을 즐기기에 부담이 되기도 했다. 청정 스위스에서 공수해 온다는 과일, 어디서만 잡힌다는 작고 예쁜 생선 모두 초면이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그걸로 그만이다. 배우려고 먹나 맛으로 먹지. 이 순간에 우리는 대화와 맛이 중요하다고! 프아그라는 (생명철학적? 이유로 사양) 아이에게 넘겼다.
중간에 샤벳과 차. 찻물 위에 띄우라고 각종 허브 화분을 담은 손수레. 집기들은 우아하고 준비는 섬세하다. 아이는 차, 나는 커피~. 만족스런 저녁 후에 향 좋은 커피를 마시는 건 밤이 늦었다고해도 꺼리지 않는다. 조각 케익과 커피배는 따로 있다니까. 커피와 케익은 평범. 식당이 차와 찻잔에 공들인 만큼 커피와 커피잔에 신경쓰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인테리어를 돌아봤고 요리를 즐겼다. 그릇을 즐기다 그 다음에는 이야기를 즐겼다. 요리가 대화를 압도하거나 그릇이 마음을 끄는 것보다 이야기 중에 좋은 요리가 끼는게 진리다. 먹으며 며칠 닫혔던 입이 열렸고 새로운 요리 등장에 잠깐 쉬었다가 대화이었다. 엄마와 딸이 서로 베프인건 큰 복이다.
부엌에는 6-7명이 움직이고 있었고 홀에는 2명이 있었다. 긴 코스 내내 4인 테이블 6-7개 쯤이 여유있게 놓인 공간에 외국인 둘과 우리 둘 뿐이었다. 사장 입장에서 오늘 결산은 마이나스다. 아이가 계산할 때 내가 매니져에게 물었다.
자리가 늘 이렇게 여유있나요?
아 예, 여기 손님들은 손님들로 가득 차기보다 여유있는 걸 좋아하셔서 우리가 예약을 많이 안받습니다.
이런 이런 이런....그럴 리가 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