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우리는 언제 늙었나
엄마생각
2012. 1. 10. 01:33
친구 어머니 별세 소식에 문상 다녀왔다. 가벼운 치매의 어머니를 동생이 모셨었다. 제수가 힘들어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얼마 후 제수의 암이 발견되었고 제수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작은 며느리 앓는 것도 죽음도 모르고 집에 오고 싶어하다가 별세했다. 마음이 무거운 시간이 끝나서인지 친구는 상심중에도 편안해 보였다. 시간만 다를 뿐 누구나 고아가 될 운명인 줄 아니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로 우리가 극히 상심하지는 않는다. 천수를 누리다 편히 가셨다고 웃는 장례식도 있고 현실의 짐을 내려놓았으니 맘 편히 먹으라 위로하고픈 경우도 있다.
오랜만에 보게된 친구들 과 둘러 앉아 얼굴을 보다가 서로 언제 가장 많이 늙은 거 같으냐고 물었다. 근 40년을 봐오던 친구들이니 늙는 거 피는 거 본인보다 잘 본다.
신문사 기자였다가 높은 자리를 지냈던 친구는 자리를 내놓던 때 확 늙었다. 엘리트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선택되지 않는다고 생각지 않았던 듯 하다. 아이들도 컷고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아내는 위로대신 앞으로 경제적으로 어떻게 할거냐 들볶았다고 했다. 진구는 존재의미와 배반감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가 그에게 중요했고 그것이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듯 했다. 자리를 잃고 친구는 기름기가 빠졌고 아내와의 관계도 험해졌다. 어디라도 좋다고 허접한 신문사에 자리 하나를 잡았다. 젊을 때는 지성인답게 공공의 관심거리- 정치, 경제 이슈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그 시기에는 자리 유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기사를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자리가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뀌었다. 필름을 되돌려보면 그때 친구가 확 늙었다. 친구자신은 이후로 그때 이야기는 않는다.
그 친구가 아들 이야기를 했다. 지난 여름, 잠시 외출한 줄 알았던 큰아들이 며칠 안보이더란다. 출퇴근한 흔적도 안보인지 사흘, 아들에게 전화걸어, 너 어디냐, 뭔일 있냐 했더니, 아, 저요, 휴가라서 강릉 와있는데요 하더란다. 웃을 일 아니었지만 들러앉은 친구들이 모두 웃었다. 친구는 말 걸지 않는 자식에 실망했고 우리는 자식에 대한 지배력(?) 약화를 동감했던 거다. 자신이 들어 앉고 아들이 취업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밤.....출출하구나 ~하면 간식시킬까요? 뭐 드실래요? 묻던 싹싹한 둘째 아들이 첫 월급 타고 얼마 안된 늦은 밤, 아들 혼자 치킨 먹더란다. 보니, 그제사 좀 드시겠냐고 묻더란다. 그깟 야참 주도권 이동에 친구는 아들에게 삐졌다. 이건 독립이 아니라 배반이야 하며 외롭다고 했던가 늙는다 했던가. 내 생각엔 그 일로 늙은 게 아니라 늙었기 때문에 삐진 거다.
친구 하나는 엘에에 혼자 살 집을 샀다. 렌트 살던 아들 부부가 집을 합치자고 했다. 혼자였던 친구는 기쁘게 아들네 3식구를 받아들였다. 온 가족이 공원 가고 쇼핑갈 생각에 행복해 했다. 아들은 자기네는 두사람이니 큰 방을 써야겠다 해서 친구는 방을 바꿔 주었다. 출장이 잦은 친구가 돌아오면 주방도 가구세팅도 자신이 해놓고 살던 데서 조금씩 바뀌었다. 모기지, 유틸리티는 바뀌지 않고 친구 부담. 엄마 담 주에 미국 간다고 전화로 알려주면 아들은 언제까지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건가를 묻는다고 했다. 아들 며느리가 공항 픽업 나오지 않아서 공항버스타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요즘 늙는다 했다. 그렇겠다.
나는 언제 늙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재작년 회사 정리하면서 늙는 거 같더라고 했다.
아마도 그럴테지. 리만 사태로 영향이 건너 건너 왔고 직원 수를 줄여야 했다. 당사자와 개별적으로 계획을 나누면서 이해를 얻고 몇달에 걸쳐 처리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해 받은 만큼 위로금을 챙겨주지 못했다. 직원들도 퇴직금 이외에 요구하지 않았다. imf를 지내면서 해고된 사람들이 고용주에게 보상요구할 아무 것도 법에 남지 않았다. 절차상 무리없이 그들을 잘 보냈지만 보호법이 없는 점, 그런 줄 알고 기대않는 직원들, 그걸 소통해야 하는 그 모든 것이 나도 모르게 서글프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일을 해내는 것과 한명 한명 개인에 대한 감정은 달리 흘렀던 거다.
보니 무언가 지켜내지 못하고 잃는다 싶으면 늙었다. 이뤘다고 생각하는 걸 잃었고 다 큰 자식의 마음에 아비가 담기지 않았고 자리가 밀려났고 관계를 지켜내지 못했다. 갚지 못해 마음에 빚이 된 지나간 관계도 상실이다. 잃은 것이 건강이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마음의 상실은 보이지 않는 몸의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어머니가 떠나도 마음이 준비되어 편안히 보낼드릴 수 있는 것처럼 편히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을까?
상실이 아니라 자발적 내어줌이면 편안할까? 이룬 것, 얻은 것은 내 밥값으로 내가 쌓고 가야하는 역사의 벽돌조각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거창한가, 언제라도 떠나고 헤어질 수 있는 게 관계라고 마음의 준비? (그게 되나, 말이 그렇지)를 하면 될까. 매달리지 않고 이별을 각오하는 것. 전문용어로 그걸 쿨하다고 하던가. 천천히 늙으려면 쿨 해야하는가.
오랜만에 보게된 친구들 과 둘러 앉아 얼굴을 보다가 서로 언제 가장 많이 늙은 거 같으냐고 물었다. 근 40년을 봐오던 친구들이니 늙는 거 피는 거 본인보다 잘 본다.
신문사 기자였다가 높은 자리를 지냈던 친구는 자리를 내놓던 때 확 늙었다. 엘리트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선택되지 않는다고 생각지 않았던 듯 하다. 아이들도 컷고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아내는 위로대신 앞으로 경제적으로 어떻게 할거냐 들볶았다고 했다. 진구는 존재의미와 배반감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가 그에게 중요했고 그것이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듯 했다. 자리를 잃고 친구는 기름기가 빠졌고 아내와의 관계도 험해졌다. 어디라도 좋다고 허접한 신문사에 자리 하나를 잡았다. 젊을 때는 지성인답게 공공의 관심거리- 정치, 경제 이슈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그 시기에는 자리 유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기사를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자리가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뀌었다. 필름을 되돌려보면 그때 친구가 확 늙었다. 친구자신은 이후로 그때 이야기는 않는다.
그 친구가 아들 이야기를 했다. 지난 여름, 잠시 외출한 줄 알았던 큰아들이 며칠 안보이더란다. 출퇴근한 흔적도 안보인지 사흘, 아들에게 전화걸어, 너 어디냐, 뭔일 있냐 했더니, 아, 저요, 휴가라서 강릉 와있는데요 하더란다. 웃을 일 아니었지만 들러앉은 친구들이 모두 웃었다. 친구는 말 걸지 않는 자식에 실망했고 우리는 자식에 대한 지배력(?) 약화를 동감했던 거다. 자신이 들어 앉고 아들이 취업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밤.....출출하구나 ~하면 간식시킬까요? 뭐 드실래요? 묻던 싹싹한 둘째 아들이 첫 월급 타고 얼마 안된 늦은 밤, 아들 혼자 치킨 먹더란다. 보니, 그제사 좀 드시겠냐고 묻더란다. 그깟 야참 주도권 이동에 친구는 아들에게 삐졌다. 이건 독립이 아니라 배반이야 하며 외롭다고 했던가 늙는다 했던가. 내 생각엔 그 일로 늙은 게 아니라 늙었기 때문에 삐진 거다.
친구 하나는 엘에에 혼자 살 집을 샀다. 렌트 살던 아들 부부가 집을 합치자고 했다. 혼자였던 친구는 기쁘게 아들네 3식구를 받아들였다. 온 가족이 공원 가고 쇼핑갈 생각에 행복해 했다. 아들은 자기네는 두사람이니 큰 방을 써야겠다 해서 친구는 방을 바꿔 주었다. 출장이 잦은 친구가 돌아오면 주방도 가구세팅도 자신이 해놓고 살던 데서 조금씩 바뀌었다. 모기지, 유틸리티는 바뀌지 않고 친구 부담. 엄마 담 주에 미국 간다고 전화로 알려주면 아들은 언제까지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건가를 묻는다고 했다. 아들 며느리가 공항 픽업 나오지 않아서 공항버스타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요즘 늙는다 했다. 그렇겠다.
나는 언제 늙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재작년 회사 정리하면서 늙는 거 같더라고 했다.
아마도 그럴테지. 리만 사태로 영향이 건너 건너 왔고 직원 수를 줄여야 했다. 당사자와 개별적으로 계획을 나누면서 이해를 얻고 몇달에 걸쳐 처리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해 받은 만큼 위로금을 챙겨주지 못했다. 직원들도 퇴직금 이외에 요구하지 않았다. imf를 지내면서 해고된 사람들이 고용주에게 보상요구할 아무 것도 법에 남지 않았다. 절차상 무리없이 그들을 잘 보냈지만 보호법이 없는 점, 그런 줄 알고 기대않는 직원들, 그걸 소통해야 하는 그 모든 것이 나도 모르게 서글프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일을 해내는 것과 한명 한명 개인에 대한 감정은 달리 흘렀던 거다.
보니 무언가 지켜내지 못하고 잃는다 싶으면 늙었다. 이뤘다고 생각하는 걸 잃었고 다 큰 자식의 마음에 아비가 담기지 않았고 자리가 밀려났고 관계를 지켜내지 못했다. 갚지 못해 마음에 빚이 된 지나간 관계도 상실이다. 잃은 것이 건강이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마음의 상실은 보이지 않는 몸의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어머니가 떠나도 마음이 준비되어 편안히 보낼드릴 수 있는 것처럼 편히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을까?
상실이 아니라 자발적 내어줌이면 편안할까? 이룬 것, 얻은 것은 내 밥값으로 내가 쌓고 가야하는 역사의 벽돌조각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거창한가, 언제라도 떠나고 헤어질 수 있는 게 관계라고 마음의 준비? (그게 되나, 말이 그렇지)를 하면 될까. 매달리지 않고 이별을 각오하는 것. 전문용어로 그걸 쿨하다고 하던가. 천천히 늙으려면 쿨 해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