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스페인 아가씨 1박 2일

엄마생각 2011. 8. 28. 13:41

큰 애가 집에 스페인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후배의 소개로 마드리드에서 만난 아가씨로, 지난 번 유럽 여행 중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 해서 뭘 차려주나 궁리(사실은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집에서 차나 한잔 하고 밥은 홍대에서 친구들과 여럿이 하기로 했다한다. 

일본으로 가려다가 지난 봄에 큰 애를 만나면서 한국이 궁금해 졌다는 스페인 아가씨는 경주, 전주 등지를 다니면서 우리나라 문화가 특별하고 풍광도 좋고 한식 맛도 좋고.. 하면서 불꼬기, 찹쵀, 뷘대떠억...음식이름을 외운다. 식탁에 내놓은 자두, 복숭아는 달고 타르트, 슈크림은 달콤하고 부드러운데 잘 먹지 않는다. (스페인꺼 보다 맛 없나? 생각했다.) 큰 애가 커피를 내려 tea잔에 담아주기에 얘, 이건 커피잔 아니고 찻잔이야 하였더니, 그 말을 눈치로 알아듣고 사내애들은 그런 거 잘 모르죠 ㅋㅋ 한다. 한국에서 마셨던 커피는 대체로 스페인 커피보다 묽다고 한다. 우리집 커피도 묽다고 한다. 그런가. 우리 집 손님들은 한 잔을 둘이 나눠 물 섞어 마시던데.

몇 년 전에 세비아에서 밤 기차를 타고 그라나다에 아침 일찍 내려 그라나다 대학 쪽으로 마냥 걷다가 평범한 커피접에 들어갔더니 아침 출근 길의 사람들이 모두 서서 커피를 마시더라, 나도 거기 서서 마셨던 에스프레소가 참 맛있었던 기억난다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 한다. 마치 그 동네를 잘 아는 것처럼 역에서 나와 우회전, 그 길로 죽가면 대학 캠퍼스  둘러 싼 담장이 나오고 쭉 더가면 정문, 그 맞은 편 쪽으로 중층의 무미건조한 아파트, 길 가의 오래된 활기 없는 상점들과 오래된 물건들, 그래 그래, 팔리기를 십년 쯤 기다렸을 선풍기, 토스터 이런 거 파는 상점들이 죽 이어지는 길, 그 위의 고가도로...

마드리드 출신인 소피아는 25세로 져널리즘을 공부하는 학생이며 직장인이며 주말이면 웨이트리스로 알바이트를 해서 학비, 생활비를 벌고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여동생과 렌트를 반분하며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학생은 물론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로 부터 경제적 독립이 어렵고 그 이유가 낮은 최저임금과 높은 등록금, 낮은 취업율, 많은 비정규직때문이라고 하니 깜짝 놀란다. 자기네는 18세 독립은 기본이며 알바이트를 풀타임으로 하면 먹고 살 수 있다고 했다. 얼핏 우리 나라 최저임금의 3배인 듯. 우리 소득 2만 불, 그들 소득 3만 여불을 비교하면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얼마나 낮게 책정되었는지 알수 있다. 자신은 시간이 일정하고 근무환경이 좋아 사무실 근무를 하지만 주말 웨이트리스로 받는 단위 시간당 금액이 훨씬 좋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사무실 근로자와 기술, 지식이 필요없는 일반 노동자 사이에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는 말이 된다. 외부에서는 스페인 경제 와해, 높은 실업율 등을 이야기하는데 내부자로서의 삶은 어떠냐하고 물으니 높은 실업율은 걱정이지만 주변에 노는 친구는 없고 일상에 경제위기와 위협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야기하다 보니, 소피아와 그 주변의 스페인 사회 내의 능력 좌표를 모르겠고 반 사회인, 반 학생인 25세 젊은이가 볼 수 있는 경제 스펙트럼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면서 어디 미디어건 간에 사실보다 센세이셔날하게 기사 쓰는 건 비슷하구나 싶었다.

져널리즘의 어떤 것을 공부하며 뭘 하려고 하냐 물으니 테러리즘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앵커, 캐스터 이런 거 할 생각은 없다, 뉴스를 발굴하고 테러리즘의 역사, 원인에 대해 배우고 리포트 쓰고 싶다...생각해 보니 소피아의 스페인에는 분리 독립하려는 바스크, 지금은 좀 조용해 졌지만 카탈로니아 등이 있고 그 중 과격한 부류는 큰 사고를 쳤던 과거가 있다. 프랑코가 말아먹은 스페인의 현대 몇십년, 그 시기의 폭정을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끌어내려는 노력중 테러 등이 있었다. 테러는 혹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아닐까?하는 질문을 했는데 소피아는 캐피탈 마드리스 사람의 시선으로 바스크 독립 주의자들의 목소리를 테러리즘과 연결하는 프레임을 보였다. 런던의 입장과 시선으로 IRA 활동을 가치메김하듯이. 억눌러서 구축한 질서는 억누르는 쪽이 당위를 주장하는데, 그거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물었더니, 유어 마미 이즈 소 인텔ㄺ쳐 어쩌고 한다.

소피아의 부모로 부터의 독립, 지적 관심과 공부의 깊이를 들으니 듬직한 체격과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돋보였다. 소피아는 스스로 독립하였기에 어른과 당당히 마주 대화를 나눌 자세를 갖추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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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넘어 소피아와 큰 애가 들어왔다. 차는 끊어지고 둘 다 한 잔씩 걸친 상태였다. 큰 애가 소파에서 자기로 하고 제 방을 내주기에 갈아입을 옷을 주었다. 괜찮다는 소피아에게 굳이 벼개닛을 갈아주니, I know boys are dirty, they are oily k k k k 하며 웃는다. 스페인 청년들도 얼굴에 기름이 흐르나 보다. 

낮선 집이라 소피아가 아침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작은 애가 출근 준비를 하며 소피아와 인사를 나눈다.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 다음 기회에 볼 수 있기 바란다 하며 아가씨 둘이 명랑한 웃음을 나누는 소리를 들으니 천장이 높아지는 느낌이다.

큰 애 깨기 전 차를 나누며 세계 경제 위기, 미국의 무리, 유럽 등 다른 나라에 미친 부정적 영향 등을 이야기를 하였다. 소피아는 보스톤에서 교환학생으로 일년 살았는데 동료가 다친 이야기, 병원비가 끔찍했던 것, 자신이 유럽에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더라, 그나마 보스톤은 다른 도시보다 평등에 대한 개념이 높다고 느꼈다..., 미국 이야기 끝에 우리나라 의료 보험 이야기를 하며 보험의 보장 영역, 보장 정도를 자랑하였는데, 그녀는 아니, 개인이 병원 비용을 낸다고? 우리는 병원비 전혀 안내는데?한다. 유럽의 세금으로 병원비를 전면 부담하는 방법과 우리나라의 소득별 사회적 보험 차등 지불, 펀드를 만들어 평등 부담하는 방법 등의 차이를 설명.... 말하다 보니 20대의 젊은 여성에게는 재미없는 대화 주제겠다 싶다. 어제 밤 이야기에 연결해 생각하면  주 40시간에 200만원 받고 병원비 등 개인적 존재비용을 따로 쓰지 않아도 되는 스페인은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어도 그럭 저럭 살만한 사회라는 이야기가 된다. 기억난다. 90년대 초 언젠가, 프랑스에서 위경련으로 응급실에서 처치받고 휴식하고 나왔는데, 한 푼도 안내고 나와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스위스에서 무릎이 찢어져 꿰메고 역시 한 푼도 안낸 것. 그때는 영사관에서 처리하나보다, 여행사가 나중에 청구하려는가보다하고 순진하고 무식하게 생각했을뿐 유럽의 무상의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게다가 자국민도 아닌 관광객에게 까지 무상이었다니!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예외없이 재정압박을 받으니 지금은 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조간 신문 국제면을 펼쳐보이니 한국에서 신문 처음 본다고 한다. 스페인도 다른 유럽에서도 종이 신문은 사라지는 중이고 신문의 수명은 많이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고 한다. 세계 어디서도 문화, 사회 풍습이 변화, 전개되어 나가는 외양은 비슷하다. 그녀는 흐름 속에서 경향을 읽어내고 있고 그에 따른 결정을 하는 데 비하여 우리 애들은 흐름 속에 그냥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몇 년 전 스페인을 열흘동안 여행하면서 풍광, 그림, 건축물 구경하느라고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지 못햇던 것이 아쉽다. 다음에는 매혹적인 풍광과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도록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