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손빨래 단상

엄마생각 2012. 1. 9. 19:34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보니 흰색 발목양말이 많다. 세탁기 안에서 둥둥 떠 놀다나왔는지 양말바닥이 검다. 발목 양말들만 모아서 손빨래를 한다. 고무줄이 늘어나 신고 걸으면 흘러내려 발가락 쪽으로 모이는 양말도 있다. 골라 버릴까 하다 생긴게 멀쩡하고 세탁기 돌린 게 아까워 마져 빤다. 오랜 만에 비누를 양말에 문대고 바닥에 치댄다. 향수마져 일으키는 자세. 치대다 생각한다. 대충 신다 버리잖고 이까짓거 뭐하러 빨까. 그럼서 그냥 치댄다. 양말은 회색 거품을 내며 제 색으로 돌아온다. 상쾌하다.

아이 방 휴지통을 비운다. 스타킹 몇개가 버려졌다. 손으로 흩어본다. 손톱 끝에 걸려 가볍게 올 틴게 있을 뿐 터지지않았다. 이런 걸 버리다니...손빨래거리에 얹는다. 어제 온 택배상자가 뜯겨져 있다. 상자 속에는 검정, 회색, 갈색의 스타킹이 얇은 거 두꺼운 거 포장채로 가득하다. 그렇군...

우리 때 고등학생은 튼튼한 먹스타킹을 신었고 매일 신다보면 발톱끝이 터지기도 했다. 버리다니 천만에. 당연히 꿰메 신었다. 그 이전 시절. 양말로 말할 거 같으면, 백열전구넣어 인체공학적으로 각잡으며 뒷꿈치 기워신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투명스타킹을 신기 시작했다. 신입생 때 우리는 스타킹이 섹시하고 매끈하려고 조심스레 신는 것인줄 몰랐다. 올이 터져 구멍이 흘러내리면 누군가가 곁으로 와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스타킹 나갔어..."알려주었다. 마치 남보기 부끄러운 뭐라도 묻었다는듯. 우리들은 "터진 데보다 안터진 데가 더 많은데 뭘..."하면서 무심히 신고 다녔다. 그러다 이게 올이 터지고 흘러내리면 매끈하고 섹시한 느낌은 커녕 칠칠맞고 처량맞은 느낌.... 어디 걸려 올이 나갈가봐 조심했고 올 틴 자리에 매니큐어 슬쩍 발라 수명을 연장하기도 했다. 지금 스타킹에 매니큐어 바르라고 하면 아이는 쪽팔리고 궁상맞다 소리 하지 않을까.

아이 앞으로 택배가 왔다. 상자 속을 보니 양말 한다스 쯤? 그렇군. 아이에게 물었다. 웬 양말을 그렇게 많이 샀니? 그냥. 편하잖아. 음....그래서 양말 상자가 날로 뚱뚱해져 가는군.

스타킹과 양말 박스를 보고나니 뭐라고 한마디 해야겠다 싶었다.
양말 손빨래했다. 깨끗하지? 몇 번 더 신겠다. 퍽퍽 막 사들이고 하지 마라. 했더니
뭘 그걸 손으로 빨아.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몇 번 신고 버리니? 하니
그냥 버려. 그거 천원이나 이천원 그래. 한다.
뭐라고 하는게 좋을 지 몰라 그만 두었다.

물건의 가치와 소명이 다해 버려지는 게 아니라 싸고 흔해서 버려지고 있다. 새로 사들이는 맛으로 버리고 있다.미국 월마트 같은 곳에서 팔리는 저가 남방샤스, 티샤쓰를 납품하려면 3달러 남짓에 가격을 맞춰야 한다. 소매값은 $19.99. 석유가격, 면가격, 인건비등 생산비용이 얼마로 올라가던 십년 넘도록 3달러 몇 센트선을 넘기면 안되었다. 그 가격이어야 사람들이 부담없이 사고 부담없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몇년이고 그 가격에 맞추기 위하여 사람 값 싸고 일거리 없는 곳을 찾아 다니며 고생한다. 상품은 더 먼곳에서 더 많은 연료를 쓰며 더 오래 달려와야 한다.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버릴수 있도록 판매자는 19.99였던 가격을 17.99로 16.99로 내린다. 월마트같은 대형 유통기업은 이익을 유지하니 내린 가격만큼  생산자가 알아서 짜내야한다. 유통회사의 높은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부담없이 버릴 수 있도록 싸야 많이 팔 수 있다고 했다. They don't need to sell that cheap. but need to be cheap enough to throw away so can sell more. 몇년 전이야기인데, 지금이라고 달라 졌을 리 없다. 

우리나라가 더 심하지 싶다. 핸드폰 2년 약정 조건이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2년 풀리면 전화기 바꾸는 습관을 만든 듯 하다. 물건이 미흡해 바꾸는 게 아니라 약정이 끝나서 바꾸는 거다. 새차를 들여다보며 3년 할부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차 부품을 조금 손봐달라면 정비공장에서는 kit전체를 갈아버린다. 이거 knob하나만 바꾸면 될텐데요? 하고 물으면 정비사는 부품이 그렇게 안나와요. 전체를 다 바꿔야 됩니다, 한다. 프라스틱, 금속 덩어리가 버려진다. 거기 들어간 노동과 기술도 버려지는 거다. 그에 비하면 양말 따위야 씹던 껌 뱉는 거보다 헐하다.

모두가 접할 수 있도록 흔하고 누구나 살 수 있도록 싼 건 좋다. 그러나 물건값이 싼 것은 누군가의 노동력을 착취한 결과 일 수도 누군가의 재화를 헐 값에 털은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택배비가 싼 건 퀵 아저씨들이 목숨을 걸고 달리기 때문이고 다른 일 할 게 없기 때문이고 쌀값이 싼 이유는 노동과 비료와 농약값을 정부가 안쳐주기 때문이다.
싸다고 쉽게 사고 쉬 버리는 거 좋은 거 아니다. 물건에는 가격과 따로 가치가 있다. 가치가 다할 때 버릴 수 없겠는가. 소유욕 충만하고 구매능력이 넘치고 기회비용 잘 따지는 세대에게 어려운 이야기다. 그렇지만 저 넘치는 양말짝(만이 아니다) 어찌할래. 썩지도 않는 저 프라스틱에 금속 덩어리는 어쩌고.
신중하게 사고 소중하게 쓰고 가볍게 살아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