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부엌 정리

엄마생각 2012. 1. 15. 04:16
짐을 줄여보자... 옷도 구두도 가방도 많이 나눠주었다. 에어컨 없이 살기로 마음 먹었고 오는 집 가는 집이 모두 실내기, 실외기, 분리, 설치하는 게 바보스럽고 번잡해서 에어컨은 놔두고 가기로 했다. 가구도 달라면 당장 줄 마음 항상 있는데, 음식물은 그게 잘 안된다. 음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음식 솜씨에 자신없어 권하지 못하고 나누는게 익숙하지 않는 거, 음식 만들기가 쉽게 않은 마음속 요리 진입 턱 그런 심리가 있을 거다. 책도 버리는 게 잘 안된다. 언젠가 여유롭게 읽을 거라는 생각과 허영과 과시가 섞여서 그럴 거다.

그래도 줄여보자. 부엌 정리.
냉장고를 뒤지다보니 묵은 반죽이 나온다. 작은 아이가 예전에 반죽해 놓고 잊은 쿠키 반죽.
버릴까 하다가 그릴에 넣고 재미로 구웠다. 좀 늦게 꺼냈는데, 모양은 빠져도 맛은 빠지지 않는다.

꽁꽁 쌓였는데다 성에가 잔뜩 붙어 늘 다시 쳐박히던 것. 꺼내 보니 대하다. 네 주민번호가 앞자리가 뭐냐. 언제적 입고냐. 얼려두었던 부로컬리 함께 볶아 해산물 스파게티로 처리해야겠다. 생선, 고기, 깨, 고추가루, 마늘, 꼬리, 사골, 멸치, 낙지, 오징어, 나물...  전기 돌리며 재고 쌓놓고, 잊고, 버리는 사이클이 싫어서 김치 냉장고 없이 살다가 올케와 김장을 과하게 하면서 꼬임(?)에 넘어가 김치냉장고를 들여놓고 말았다. 재고에 맞춘 창고가 아니라 창고가 생겼으니 인벤토리가 늘어난 경우다.

어머니집 냉장고를 처분하면서 나온 무말랭이. 채 썰어 말리신듯 가늘다. 먹기에는 오래 되었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다. 추억의 무말랭이다. 말린 고추. 이거 뭐냐. 홍고추 먹고 남아 베란다 볓에 말린, 오리지날 색스러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러나 오래된....아듀.

스파게티 소스 반병. 남은 지 얼마나 되었기에 표면에 수상쩍은 덩어리, 수상한 탈색. 냉장고에 있었으니 별 일 없겠지 했는데, 미안. 내가 게을렀다. 안녕. 직원의 어머니가 짜 보낸 페밀리 오렌지 쥬스 유리병에 든 들기름. 참기름 들기름 각 일병을 받았는데 들기름이 남았다. 오래 되었다. 미안. 누군가와 나눠 먹었어야 했다. 기름을 어떻게 버리나. 마요네즈. 케찹. 공장산 대형 소스병들. 공장산 대형 소스를 안쓴지 꽤 되었다. 오래된 그대들, 나 다시 보기 어려울 거야. 안녕.

작은 애가 만든 피클 여러 병. 얘, 누가 먹는다고, 너는 재미로 만들고 쳐박아 두면 관리하는 나는 어떡허니. 만들고 쌓두지 말자. 어제 여자 후배 다섯이 다녀갔는데, 줄까 말까 망서리다 말았다. 맛보고 흉볼까봐 ㅠㅠㅠ 이걸 어쩐다?

아이가 과자만들기에 쏠렸던 한 때의 재료들. 바닐라, 초코, 코코넛 가루...어줍잖게 유기농 밀가루, 유기농 설탕 (그 멀리서 알게 뭐냐? 못 믿는다.) 가루 내리는 데 필요하다고 유난하게 생긴 채, 구이 판, 머핀 봉다리...한 살림이다. 얘, 취미 바꿔대지 말고 진득히 해라. 혈액형 때문이냐...

부엌장 구석구석 잊었던 것이 나온다. 밀가루, 설탕은 가격이 위협적으로 올랐으니 부지런 떤 거라 치고 젓갈, 간장, 각종 소스, 이나라 저나라 허브, 가는 스파게티, 굵은 스파게티, 꼰 푸슬리, 리본 푸슬리, 마카로니.. 이건 다 뭐냐. 장사하려고 했나? 한 때 쏠렸나? 아마도 요리조리 재보고 싸다고 샀을 거다. 깊이 들어앉은 프라스틱 통에서 극강의 물건이 나왔다. 청수냉면. 2000년대 초 생산. ㅋ.

싸다고 사서 짊어지고 살지 말자. 내 지갑이 당해낼 수 있다고 무심하게 사지말자. 나와 내 가족이 필요한 만큼, 소비할 수 있는 정도만 사자. 끝 모르고 대한민국 돈 되는 거 팔아대며 지 앞으로 끌어모으다 뭔 일 생기면 지하 벙커에 가죽잠바 입고 들어가는 놈 아닌 다음에는 적당히 지니고 살자. 그 놈은 갇힐 건데 많이 지녔다고 뭐할거나. 가지고 있다 쓰레기 만들지 말자. 지구가 힘겹다. 집집마다 사들이고 쌓아놓으면 가격이 건방져 진다. 있는 사람 버려서 손해고 없는 사람 비싸게 사야해서 손해다. 내가 덜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가 힘들이지 않고 가질 수 있다. 냉장고를 하나로 줄이면 원전도 중지할 수 있다. 줄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