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목소리 나이

엄마생각 2011. 8. 31. 16:07

 어린 목소리, 나이 든 목소리라 하는 말을 들어보았으면서도 목소리가 나이따라 간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소리도 기관에서 나오는 건데 몸의 기름기, 물기 빠지면 소리도 피부처럼 마르고 건조해지는 거라는 생각을 못한 거다. 

 얼마 전부터 말을 하다 보면 쉰 목소리가 나고 목 저 안쪽이 마르고 갈라지는 느낌이 났다. 아침에는 전화 받기도 걸기도 난감했다. 목이 잠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부은 얼굴이 오후에 내리듯 오후되면 목소리도 풀렸다.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니 의사 말이 雙으로 나란한 성대중 하나가 움직이지 않는 듯하다고 한다. 뜬금없이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가 부르느냐 하기에 아니라 했더니 가슴사진 찍어 보았냐고 묻는다. 폐결핵 사진이요? 하고 되물었더니 더는 묻지 않고 애성을 호소함이라고 쓴 진단서를 끊어주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애성이 뭔가...하고 생각해보니 소리 내는데 장애가 있다는 의미인 듯.

 대학 병원의 젊은 의사는 목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성대가 부어 움직임이 둔하다고 한다. 혹시 교회에서 기도나 설교같은 거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저 번 의사와 똑같은 질문이다. 아니라 하니 혹시 신트림이 올라오지 않나요 묻고 갑상선 상태를 묻기도 한다. 진단 끝에 속쓰림 없는 내가 처방받은 약은 제산제다. 목이 쉬는데 위 제산제라니 그런 연결이 있는가 보구나....했다.

 2주일 후에 가니 의사가 바뀌었다. 그가 보더니 부은 것은 내렸고 한 쪽 성대에 작은 물혹이 보인다 한다. 술담배 안하시죠? 하더니 커피 콜라 그런 거 억제하시고요, 물 자주 마시고요, 목 아껴 쓰시고요....일사천리로 말하며 차트에 그림까지 그린다. 물혹이 한 쪽에만 있는 경우 잘 안 없어진다고 한다. 양쪽에 있어야 없애기 쉽다는 이야기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질문은 늘 면담실을 벗어난 후 떠오른다. 병원을 나서니 내게 왜 그곳에 물혹이 생겼을까 물어볼 걸 싶었다. 다음 진찰 때 물어보아야지 생각했다.

 병원 입구 좌우로 병원 담을 따라 군것질 좌판이 이어진다. 대학 병원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횡단보도를 건너 오가는 사람들이 옥수수, 가래떡, 과일, 요구르트, 땅콩, 양말...을 보고 지나간다. 그 중 누군가가 뭐를 사라고 외친다. 노숙자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빅이슈 입니다. 자활을 돕습니다.... 볓에 그을고 마른 몸의 사내가 영화배우 웃는 얼굴이 표지에 박힌 잡지를 쳐들고  외치고 있었다. 목에 핏줄서게 힘을 줘도 저 안 어디가 막힌 듯 소리는 눌리고 갈라져 나왔다. 거리의 먼지와 매연에 피곤한 그의 목소리는 폐벽돌이 부딛으며 마른 흙모래를 흘리는 것 같았다. 남의 곱절로 힘든 그의 거친 시간이 그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었다.

 병원 앞 횡단보도 신호 앞에 할머니 셋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가방을 이쪽 어깨에서 저쪽 옆구리로 엇갈리게 메고 (크로스백은 할머니들 패션 트렌드인 듯) 굽은 허리에 오자형으로 다리도 벌어져 지팡이에 의지하고 선 할머니들은 여든살 이짝저짝처럼 보였다.  친구인 듯 어깨에 손을 얹기도 하고 크게 손을 내젓기도 하면서 캬캬캬캬 화통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은 쪼글쪼글 주름으로 가득하고 턱도 목도 늘어졌지만 즐거운 에너지가 넘친다. 할머니들 목소리는 그런데 쥐어짠듯 거칠고 갈라졋다. 거칠은 베 보자기에 피부가 쓸린듯 탁하고 쉰 소리가 났다. 힘주어 짜내는듯 쉰 목소리에 거칠고 말라있을 속 피부가 떠올랐다. 80년을 울고 웃고 노래하고 소리치며 산 세월이 내는 목소리구나....

  이제는 왜 물혹이 생겼나가 궁금하지 않다. 아마도 울고 웃고 소리치고 살아온 시간, 가끔 기쁨과 응원과 분노에 목터져라 과도한 사용, 그런 이유일테지. 나이 든 몸에 새로이 나타나는 것은 아무래도 살았던 뭔가의 축적이다. 삶의 진동이 조금씩 오래 쌓이면 무지했던, 무시했던, 허약했던 어느 부분에서 잔금이 생기거나 돌기 솟아 습관과 시간을 되돌아 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생활의 어디서 시작된 진동인지 모르고 진동이 옮겨가는 메카니즘도 모르지만 나는 암튼 소리를 줄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란다. 잘 되었다. 말도 줄이고 멀리서 소리치지 말고 가까이 가서 대화하고 헛소리는 삼켜야겠다. 물혹이 왜 생겼건 간에 그려려니 하고 소리 줄이고 말 아껴 살면 커지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