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맹신자들

엄마생각 2012. 7. 15. 14:38

내가 사는 동네에는 요지마다 유명 대형 슈퍼마켓이 자리하고 있고 그 대형 슈퍼들의 소형 슈퍼가 골목마다 촘촘히 들어와 있다. 얼마 전에는 일요일에 문을 닫는 듯 하더니 요즘은 휴일없이 영업하는 듯 하다. 

 

서울 행정 법원은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지자체장과 지자체의회 사이의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규제를 해제해 버렸다. 대구지법에서도 규제와 관련한 조례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대형 마트들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절차의 미흡함을 규제의 필요보다 앞세우는 판결이 안타깝다. 집에 불이 나서 튀어 나가야하는데 의관 갖춰입지 않았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라는 격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222142415&code=940301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7/19/0200000000AKR20120719183000053.HTML?did=1179m 

 

합정동 로타리 엘지자이에 홈프러스가 입점하려 하고 있다. 거기서 7-800 메타 거리에 망원시장, 월드컵 시장이 있고 주변에는 떡볶이집, 통닭집, 떡집, 만두집 등 소소한 상점들이 있다. 시장 동쪽에는 홈프러스 익스프레스가 있고 북으로 1 키로메타쯤 떨어진 곳에는 마포 농수산 시장과 월드컵로를 마주하고 홈프러스 월드컵점이 있다. 보면 월드컵로를 따라 2키로메타 남짓한 거리에 홈프러스 대형 점포 둘이 홈프러스익스프레스를 가운데에 배치하고 맞은 편의 망원시장 월드컵 시장, 마포 농수산 시장과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존의 홈프러스 점포들 만으로도 동네 시장과 주변 상인들은 살기 바듯하다. 이런 상황에 홈프러스 3만 m2포함 8만 m2의 대형 쇼핑몰이 합정동에 들어서면 지역 수천명의 생계가 달려있는 시장이 무너지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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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 시장 상인들이 홈프러스 본사에 입점, 개업 중지를 호소하고 항의 시위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하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그 사람들(홈프러스 개업)이 불법은 아니잖아?"

 

내가 말했다. "불법이 아니라 弄농법이지. 국회에서 ssm규제법을 의도적으로 지체하였고 국회 통과 후 지자체에서 조례를 만드는 동안 신고 절차를 끝냈지. 이해가 맞는 부류들끼리 시간 벌어주며 농간 부린 거지."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법은 지켜야지. 법이 알아서 하겠지." 

 

법은 사람을 보호하려는 건데 친구는 생존권이 법의 권위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법은 그 자체가 완벽하고 善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구성원에 대한 보호의 각을 넓히고 그래서 균형 속에 사회가 유지되도록 사람이 고치기도 만들기도 하는 법은 사회 내부 세력간의 힘에 따른 타협과 사회별, 시대별 인식의 한계 내에서 지배적 합리성(?) (또는 지배자가 주장하는 합리성)에 따른 합의의 산물일 뿐 그 자체가 완벽한 권위가 아니다. 세력간 힘의 불균형 정도에 따라서 어떤 시대의 법은 약자에게 족쇄가 되고 강자에게 날개가 되기도 한다. 해석과 적용, 집행의 균형, 불균형은 법의 합리성과 별개의 영역. 게다가 합정동 홈프러스는 다른 지역의 대형 슈퍼 침투와 마찬가지로 법에 관련된 문제이기 이전에 공존과 타협의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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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가, 법, 지배자 등의 권위에 굴종하도록 배웠다. 그것이 우리의 머리 위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마땅하니 의심하지 말고 시키는대로 행하기만 하도록 길들여졌다. 권위를 구축하는 배경, 권위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들의 이해관계, 권위행사가 대상에 미치는 장단의 영향을 생각하지 않도록 세뇌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하라는대로 하기나 해. 덤빈다고 뭐가 달라질 줄 알아...

 

거리에서 한미FTA에 대한 문제점을 인쇄한 홍보물을 나눠주었다. 50대의 양복입은 신사가 다가와서 인쇄물을 받아 읽더니.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부가 하는 걸 왜 반대하고 지랄이야! "하며 종이을 구겨버린다. 정부는 언제나 옳다고 믿는 모양이다.

 

한때 정치에 몸담았던 경제 전문가인 친구와 민간 자본이 투입된 SOC 사업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중 친구가 말했다.

"(터널, 고속도로, 철도 등) 수요 있는 거 다 알아보고 일 벌리지 그냥 일 벌리겠나." 

"수요 예측을 잘 못 했잖아." "수요 예측을 실수한 게 아니고 수요예측 소설을 썼잖아"하는 반박에 그 친구는 

"걱정하지 마. 정부측에 전문가 많아, 다 알아서 한다고." 쉽게 답한다. 


그 친구에게는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공익, 공공선에 대한 의식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심이 없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 또는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실수로 수요예측을 계속 내면 전문가가 아니고 고의로 수요예측을 창작한다면이 그런 사람은 전문가라는 명함을 내미는 작가이거나 사기배일 뿐이다. 

 

우리는 기존의 것을 의심하고 뒤집어 보라고 배우지 않았다. 패러다임 공급자는 대세라는 말로 심리 마케팅을 하고 점검능력없는 대중은 이에 합류한다. 대중이 따르고 행하면 남은이들은 적합성에 대한 점검이나 의심없이 따른다.  뒤집어보고 의심하는 대상이 정부, 법과 같은 지배자적 권위인 경우 의심하는 자에게는 부정적, 반정부적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어른 말씀인데 토 달지 마라, 누구 앞이라고 감히, 누구 말씀인데 감히 따지느냐... 어려서 부터 일상생활에서 많이 들어왔던 말이다. 권위가 허구일지라도 섬기라는 거다. 사적 영역에서 굳은 사고와 행동 습관은 공적 영역에서도 같다. 선악,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공공익과 그것들의 가치의 크기를 헤아리지 않고 권위에 굴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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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본질인 생존권 보호를 뒤로 미루고 주변적인 절차를 앞에 놓는 법관은 가치의 크기를 따질 줄 모르는 거고 불법은 아냐잖냐고 법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친구는 불완전한 규약을 맹신하는 거다. 정부와 전문가가 알아서 한다고 믿는 친구는 천부의 이성과 권리를 버리는 거다. 딱고 조이고 기름치자고 어느 공장에 걸려 있었던가? 주변의 권위라는 것, 헤아리고 의심하고 따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