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엄마생각 2012. 8. 14. 19:08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졌던 몇가지 생각.

환경(자연)은 인간에게 굴레를 씌운다. 자연을 극복할 수 없으면 인간은 굴레를 내재화 시켜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된다. 삶과 죽음을 자연에 의탁한다. 역사의 굴레는 벗어날 수 있는가.  타자의 지배의 몇백년 간 뼈에 새겨진 굴레는 운명으로 내재화되는가? 실패의 기억은 맞섬을 포기하게 하는가. 포기의 평안함과  두려운 맞섬의 자유 중 어떤 것이 중한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멕시코 출신으로 가브리엘 마르게스, 바르가스 요사와 함께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남미 여러나라에서 살았고 18세에 멕시코로 돌아와 법학을 전공, 변호사로, 고위 공직자로, 프랑스 대사로 활동했고 미국의 여러 유명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성장기 때 남미 여러나라에서의 식견, 지식인으로 작가로 미국 등 외국에서의 활동, 방대한 역사 지식은  그 결과 현재 라틴아메리카가 당면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와 그 역사적 구조적 뿌리를 내부인으로서 깊이있게 외부의 눈으로 냉정하게 보게 하였을 것이다. 책을 마치고나서 검색하니 그는 아쉽게도 지난 5월 타계하였다.

 

 이 책의 원 제목은 묻혀진 거울 The Buried Mirror : Reflections on Spain and the New world이다. (작가의 서문을 보면) 거울은 진실을 드러낸다.- 잘났다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아, 거울을 보라. 허상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거울은 현실, 지구의 표면과 심연, 그곳에서 살고있는 사람들 비추고 그들을 상징한다-. 그가 거울에 담은 의미는 다층적이다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하자면 진실을 비추는 거울은 묻혀있다. 스페인과 스페인계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의 매듭과 가지뻗기에서 힘있는자 진실을 숨기고 땅을 훼손하고 생명을 짖밟는다. 진실을 오도하는 자누구인가. 그는 이 책을 통해 각자 거울을 꺼내 진실을 찾아 비추는 작업을 권하는 게 아닌 가 싶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라는 한국어 제목과 달리 이 책은 로마와 이슬람 지배를 지나 레콩키스타를 통해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신대륙에 진출, 식민지를 발판으로 제국을 형성하였던 스페인의 현재까지의 통시적 역사와 문화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피사로가 잉카를 정복하고 코르테즈가 아즈텍을 멸망시킨 후 정복자의 탐욕이 라틴아메리카를 수탈한 역사와 피해자에게 남긴 낙후된 정치, 극히 불평등한 경제, 불안정한 사회 구조 형성의 과정을 스페인 내부의 정치, 종교, 경제적 변화와 연관하여 담고있다.

 

 저자는 역사 이야기에 앞서 정복, 피정복인들의 기질과 신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기원전 2000년 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농사에 기반해 살기 시작한 사람들의 땅, 고향에 대한 애착 성향과 유럽 대륙의 끝이며 지중해에 갇힌 땅에 살면서 기원전 1000년 항해에 눈 뜬 이베리아 사람들의 복합적 기질. 

지역 중심적이고 개인(?)자유 기질은 로마, 이슬람 지배와 회복 기간, 통일 이후 중앙 정부와 지역간 통제와 대립상황에서 중앙으로 힘을 모으는 주변 유럽국가들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 기질은 스페인이 식민지를 원거리 통치하고 식민지 땅을 분할하고 땅과 원주민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발휘된다. 스페인 중앙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 하면서 지역인을 노예로 쓰고 부왕, 농장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유럽에서 사라지고 있던 봉건제가 스페인에 잔존하고 스페인 식민지에서는 유지, 강화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아즈텍, 잉카, 마야인의 자연환경에 의해 형성된 신화와 자연에 의해 지어진 한계는 그들이 어처구니 없이 짧은 시간에 피침, 정복당하게 만들었다. (무기의 미발달, 말horse 같은 이동 수단의 부재, 신정 정치, 균에 대한 면역력 부족 등) 

 

 고대 아메리카인에게 우주는 존재의 원천이면서 위험의 원천이었다. 미약한 인간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제안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의 희생이었다. 삶의 연속성을 위한 생명의 희생은 힘의 원천인 우주, 자연에 대한 경배였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생명은 불로 돌아가고 태양이 생명을 준다는  믿음이었다. 공포와 경외의 대상인 자연을 제어하고 예측할 수 있는 자가 신으로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의심할 수 없는 믿음이었다.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멕시코의 정신의 한 축은 피라미드 정상에 앉아있는 황제와 그 위의 태양이다. 태양 아래 황제 위에는 폭발하는 화산의 화염위로 날아다니는 존재가 있다. 다른 한 축은 십자가있는 카토릭 교회) 

 

 아즈텍에는 화염 속 죽음의 고통은 존경해야 할 위대한 어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잉카에는 신이 이 세상에 온다는 신화가 있었고 신의 모습은 특별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상상했다. 코르테즈, 피사로가 아메리카 대륙에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 그들은 신들의 현신으로 믿었다. (인용...목테수마가 신들이 귀환했다는 운명론에 지배되었다면, 코르테스즌 어떤 장애라도 극복하여 그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에 지배되어 있었다...) 

 

 주어진 한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신화는 피지배의 고통을 겪는데 어떤 기능을 했을까. 위로와 희망을 받았을까.

운명으로 수용하게 하는, 고통을 잠재우는 약은 아니었을까.

 

 저자는 지배국의 정치, 경제적 환경과 변화에 따른 결정들이 피지배국을 운명지우는 연관관계를 풍부한  역사 지식과 문화적 안목으로 풀어낸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치, 사회적 후진성과 경제적 불평등의 이유를 몇가지 짚는다.

 

   스페인의 봉건제-정치적 후진성과 중앙 정부의 군사력,경제력의 위축에 따른 개혁의 지체, 그런 후진성과 보수성이 과두 지배 체제로 라틴 아메리카에 이식되었다는 점,

 

로마로 부터 스페인의 독립이 로마의 멸망에 의한 것이지 스페인 자체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독립은 각국의 투쟁의 결과이기보다 스페인 힘의 위축과 경제, 군사적 붕괴에 의해 주어졌다는 점,


주어진 독립의 결과 이슬람의 지배 이전에 스페인이 많은 부족의 침입을 받았던 것처럼 독립 이후의 라틴아메리카도 기존 지배층의 과두 지배체제가 계속 되었고 그에 대한 항쟁과 내전으로 성장보다 치유가 급했던 점,

 

식민지 시대 원주민, 혼혈인에 대한 교육의 부재로 라틴아메리카인의 지적 수준이 낮았던 점-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90%가 넘는 문맹율, 교육시스템 부재.

 

스페인이 식민지에서 파낸 금과 은의 75%가 영국 프랑스 등으로 부터의 소비재, 사치재 수입으로 넘어갔다. 영.프가 자본을 형성하고 산업을 일으킬 때 스페인은 사치와 해군력 확장에 힘을 낭비하여 자본화와 산업 발흥에 뒤쳐졌다. 스페인은 농경국가에 머믈며 국내 산업 부재로 북유럽 상품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스페인은 동일한 생산-교역 패턴을 본국과 식민지 사이에 심었다. 식민지인 자생에 필요한 다양한 농산물 경작을 금하고 스페인내 생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식민지가 동종품 생산하는 것을 금하였고 스페인이 필요로 하는 몇가지 품목을 생산을 제한 하였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산업이 발달하지 못하였고 서구가 필요로 하는 농산물-설탕, 커피, 담배, 초코릿...- 생산으로 내몰린 점.

 

스페인이 빠진 자리에 미국과 자본이 들어섰다. 미국은 정치 공작과 군사적 행동과 위협으로 땅과 산업을 빼았았다. 미국 자본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사회 개혁과 삶의 질을 올리려는 식민지인의 노력을  패퇴시키고 정부을 전복시키고 친미적 부패 독재 정권을 심어놓기도 했다. 칠레의 아옌데를 살해하고 그 후의 피노체트를 세운 것, 니카라과의 세사르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암살하고 그를 살해했던 소모사를 지원하고 정권을 잡게 한 것 등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성장과 경제적 기초를 닦으려는 노력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독재의 어둠과 공포로 밀어넣은 미국의 대표적 해악질 중 하나이다(인용...미국의 상인들을 위하여 융자와 신용, 투자에 유리한 조건을 설정하였으며 미국의 발전에 필요한 광물, 농산물, 천연자원을 라틴아메리카가 수출하도록 하는 경제정책을 폈다....라틴아메리카 상인들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지속되어온 농업과 광업의 경제구조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광대한 아시엔다. 광물의 집중적 채굴, 저임금의 노동력이 증대 되었다. 토지와 광산의 소유자가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한편에서 대다수사람들은 더 빈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19세기 말,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 지역의 평균 수명은 27세 이하였고 문맹률이 98%에 달하는 지역도 있었다....19세기 라틴 아메리카는 주변부 자본주의의 고아로 전락해서 오로지 중상류층의 소비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럽과 미국과의 무역에 종사했다....이러한 방법으로 거대한 부가 창출되었다. 상층부에 집중된 부는 조만간 조금씩이나마 밑으로 내려가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가 스페인과 조우시 상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힘의 불균형이라는 점은 그 이후의 역사 내내  변하지 않았다. 지속되는 굴레를 어떻게 벗어날까. 방법이 있기는 한가.

 

 저자는 타자의 문화까지 내재화하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융합의 또는 multi layer의 문화, 침탈 이전에 땅을 공동 경작하고 나누었던 문화를 이야기한다. 라틴 문화의 지속성이 경제와 정치에는 왜 불가능한가 묻는다. 지식이 미천한 독자로서 그것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융합'된 문화에는 서구의 것을 동경하고 우수함의 상징으로 흉내내고 그것을 미래로 보는 시선과 잉카, 아즈텍, 원주민과 혼혈의 문화는 변두리 급으로 과거의 것으로 간주하는 시선이 있지 않은가. 태도일 수는 있으나 답일 수는 없는 문화론은 뿌리부터 복잡하게 얽혀 당장의 답이 없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를 상투적으로 마무리 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1992년에 이 책이 나온 후 20년이 지났다. 경제 지형이 변하였고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은 다방향적이 되었다. 그 에너지는 라틴아메리카에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를 심화 시켰다. 자본주의는 '독점'이 본능이다. 독점이 자본에게 좋은 점은 경쟁을 다 물리쳤단 점이다. 자본의 유토피아인 자본독재를 가능케 하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한다. 국가 레벨에서는 세계화와 FTA이다. 체급은 무시된다. 내부 자생을 위한 Safety zone도 무너진다.


 멕시코는 미국과 NAFTA를 중미 5개국은 CAFTA를 맺었다. 미국의 자본과 산업은 더 굵은 젖줄을 잡았고 발효 몇년 후 멕시코의 경제는 더욱 참혹해 졌다. 중미는 체결 과정에서 이미 미국 자본에게 국민이 먹고 살 거리 - 정유, 통신, 유통, 하다못해 요식업까지 내주었다. 칠레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에서 앞서 나가고 브라질은 룰라 대통령의 8년 동안 자원을 통한 성장, 분배 문제의 부분적 해소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세계적 경제 후퇴/정체기에 자원을 통한 성장은 한계에 부딪는다. 분배 역시 제약을 받는다.


 멕시코는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멕시코 통신사업을 민영화하면서 카를로스 슬림에게 헐값에 주었다. 멕시코 통신 시장을 독점케 하여 그를 세계 제일 부자로 만든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 그들 사이의 결탁과 부패. 대자본가의 경제력 집중과 시장 독점. 부정 축재. 대통령의 형은 마약 카르텔과 거래. 동생은 다른 마약 카르텔에게 살해 당해. 그는 미국과 NAFTA를 체결하고 멕시코에서 쫓겨났다. 경찰, 군인, 민간인 언론인 등 몇 년 사이 4만명 이상이 사망한 마약과의 전쟁 진행중.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 리더쉽과 사적 이익, 범죄 집단에 밀리는 국가 행정력. 절개되어 피를 빨리는 상처에 다른 핏줄이 더 터진 형국이다. 

질문이 더해진다. 오래된 굴레는,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내지 못하면, 다른 굴레를 부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