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진짜 잡담

엄마생각 2011. 9. 26. 16:06
 방귀 잦으면 똥 나온다고 하더니 결국 일을 냈다. 얼마 전에는 가스불을 끄고 나왔는지 가물가물 하더니 이번에는 압력솥을 가스불에 올려놓고 다른 일로 집안을 오가다 까마득히 잊었다. 어디서 냄새 들어오네, 생각하다가 방에서 나오니 냄새가 짙다. 그제서야 아, 가스불~~켜놨 구 나~~~하는 속도로 정신이 돌아왔다. 압력솥 꼭지를 올리면 치익-하고 나오던 김은 말라버린지 오래. 솥 안은 다 타붙었다. 그만하기 다행이다.

 돌아서서 다른 일을 벌이면 좀 전에 하던 일을 잊곤 한다. 가족들에게 가끔 불 위에 뭐 얹어놓았으니 몇 분후에 불 끄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을 어딘가에 두면서 이 물건 여기에 두었으니 내가 잊어도 네가 기억하기 바란다고 부탁하기도 한다. 기억력이 부실해 지니 의존하는 거다. 단순한 기능의 부실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는데 판단에 관한 거라면 어떨까. 내 기억은 부실해서 못 믿으니 내 의견을 접겠다 할 수 있을까. 건망증은 인정해도 자신의 의견과 판단을 반성하고 양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다. 정체성, 자존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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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는 시간에 수영장에 딸린 샤워장은 발랄(?)하다. 대개 할머니들이라 아무에게나 쉬이 말 걸고 서로 등 밀어주며 웃고 떠든다. 어느 병원이 뭘 잘하고 어디가면 뭐가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할머니들은 뭐라고? 뭐라고? 두 세 번 묻고 두 세 번 답한다. 아까 이름이 뭐랬지? 또 물으면 지청구 주며 웃고 정신없다. 한 할머니가 어제 배추 두 포기 사서 김치 담궜슈 그러면 다른 할머니가 나는 세포기 샀어 팔천원 줬어 그럼 딴 할머니가 늙은이 둘 뿐인데 누구 먹는다고 많이 담가? 하면 다른 할머니가 몇 포기 샀다고? 세 포기 샀대...그럼 요새 얼마 줬댜? 그렇게 계속이다. 할머니들이 배추 몇 포기 샀슈?로 얼마동안 놀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물기 닦고 집에 오니 수영모자가 없다. 한 번은 물안경을 놓고 왔고 저 번에 샴푸 놓고 왔다. 물소리, 웃음소리에 비누 거품 피하다 정신을 놓는 거다. 젊으면 손은 손대로 입은 입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할 수 있었고 얼마 전 까지 생각하는대로 행동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행동해야 하는 것에 맞춰 생각을 꽉 잡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수영강사가 사람들을 모아 세우고 영법을 바꾸거나 자세를 교정한다. 노인네들 중에 몇은 강사 말에 주목하지 않고 자기 흐름대로 헤엄친다. 다른 사람들이 새 동작을 시작하니 그제사 그 할머니들은 지금 뭘 하라고 했어?하며 중구난방으로 묻는다. 강사는 목이 쉰다. 몇 노인은 개별 설명이 당연한 것인 듯 뒤늦은 질문을 반복한다. 
아 말할 때 들어~하고 한 할머니가 묻는 할머니에게 침을 준다.
 
 노인네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다보니 나를 보게 된다. 컴퓨터 초보이니 화면도 자판도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일러줘야 한다. 그건 당연하다. 노인 학생중 몇은 집중해 들으며 자기가 건드린 화면과 자판을 기억하며 이걸 만졌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이렇게 하면 되냐고 복기 후 질문한다. 이걸 다 배우면 손자에게 이메일 보낼 수 있나요?하고 묻는다. 목적, 기대가 뚜렷하고 흥미 가득하다. 이런 노인들은 빨리 깨우치고 진도 나갈 수 있게 연습 한다.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고 싶게 만든다. 잘하셨어요 칭찬을 들은 노인은 곁눈질하고 있던 옆자리 수강생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몇은 설명할 때 듣지 않는다. 다른 화면에서 자기가 하던 작업을 끌다가 설명을 놓친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질문을 한다. 개별 설명을 받기 전까지 옆 사람에게 묻거나 이것 저것 건드려 볼 만 한데 가만히 기다린다. 수동적이랄 수도 있고 건드리다가 엉키는 상황을 조심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간단한 프로세스를 기억해서 명령을 완료하기보다 강사가 옆에서 단계단계 불러주기를 원한다. 동작을 따라하지만 동작의 목적을 알려하지 않는다. 동작의 연결을 이해하려하기 보다 남이 손 잡고 걸음마 떼어주기를 바라는 듯 의존적이다. 몇 번씩 일러줘도 제자리니 맥이 풀린다. 빠르게 배우는 쪽이 동작의 목적을 이해하고 순서을 응용하는데 비해 의존적인 쪽은 알려준 방법과 순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의존성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드는데, 그건 사고 행동의 경직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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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냐고 하지만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의존성을 최소화하는게 오는 세월을 늦추는 한가지 방법이 될 듯하다. 뇌가 쇠하니 어짜피 의존해야 할 건 주변에 편하게 알리고 타이머, 핸폰 등 전자제품도 활용할 일이다. 부담을 나눠 진 주변에게 감사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선배 대접, 노인대접 받아온 "대접"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건 극력 피할 일이다. 어떤 대접을 받는것에 익숙하다는건 뒤집에 보면 그것에 기대하고 습관지어 졌으며 의존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아직 그런 일은 없지만, 앞으로 오랜 시간 그럴 일 없을 거라 믿지만 암튼 그건 올 세월을 빨리 땡기는 일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내 친구 대하듯 대접하면 내가 젊어진다. 경직성, 상투성, 개선없는 반복을 경계할 것. 안 그러면 젊은이들이 같이 안 놀아 준다.

 머리, 심장 rpm을 높게, 속을 비우고 흡입력을 좋게, 사회적 관심과 공감능력 개발. 
의견과 판단을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할 것. 한마디로 고집 부리지 말라는 것.